초파일을 며칠 앞두고 교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차가 출발을 하자 개인택시 기사가 먼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어저께 저녁에 제등행렬을 하는데 제가 업이 그러니까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불편했지만 보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아직도 감동을 느끼고 있는듯이 말을 하면서 아마도 자신이 불교신자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런데 이전에 생각해보지도 말해 보지도 못한 말이 내입에서 나갔다.
성령이 나를 주장하시고 내입을 쓰시는 것이었다.
“예 그렇군요 참 좋으셨 겠네요 그런데 기사아저씨 보기에 좋다는 것은 즐거웠다는 말인데 즐거운 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니지요?”  
“네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만 불교는 참 좋은 종교지요”
“.......”
“그런데 불교는요 사람앞에서 옳은 사람이 되어보자는 종교거든요. 그사람이 자신이 되었는 타인이 되었든 사람앞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곧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것이지요.”
“아 예 그렇군요”
“그래서 불교는 스스로 자기의 욕심을 다스려 보려고 도를 닦기도 하고 예불을 드리고 공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런데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옳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앞에서도 옳게 살기가 힘이 들고 자식앞에서도 옳게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앞에 옳은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
“사실은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앞에서 잘못된 것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죄입니다. 죄로 인해서 영혼의 생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사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인간의 저주라고 말합니다. 불교나 여타 종교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제를 인간관계에서 해결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노력이 가상하고 때로는 귀하기도 하지만 문제해결은 안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와의 끊어진 관계를 되돌려 놓으시기 위해 그아들을 이딸에 죄인의 모양으로 보내주시고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앞에 옳다함을 받을수도 없고 하나님을 만날수도 없고 가까이 할수도 없는 죄인들의 죄를 사하심으로 하나님앞에서 용서받을수 없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용서 받고 잃어버린 영혼의 생명을 다시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하나님과 함게 살고 그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고 친밀해지면 하나님이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아 예.”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진지하게 모든 말씀을 집중을 해서 듣고 있었다. 이어서 말을 했다.
“그래서요 다른 종교처럼 생각이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십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속에 함께 하시며 살아주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저는 이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교회만 다녓습니다. 내머릿속에 하나님이 있었고 내생각속에는 하나님이 계셨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이었습니다. 군에 있을 때에 나와 동생들의 형편이 너무나 처절한 나머지 그화살을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욕하면서 악심을 품고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죄인이구나’ ‘내가 당한 이모든 저주가 죄로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게 임한 것이구나’ ‘그리고 한번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고 심판이 있는거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아들을 이땅에 죄인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그가 내죄를 담당하시고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이구나. 그래서 예수르 믿으면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거구나. 이와같은 깨달음이 오면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 그때부터 내가 변화되는 삶을 살기 시작을 했습니다.”
“......”
“그때부터 실제로 나의 삶에 하나님이 도움을 주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6년동안 피를 토하던 폐결핵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중 찬송을 부르는데 즉시 고침을 받았습니다. 74년에 오일쇼크로 경제가 어려울 때에 남들이 들어가기 힘든 직장에 기적같은 역사로 합격을 해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즘말로 인생역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말로 간증을 하고 36년동안 변함없이 하나님의 도와주시는 사건들을 말하는 가운데 특별히 속수무책이었던 나의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듬어지고 고쳐지고 다스림을 받는 삶을 36년동안 살은 것을 말했다. 그가 말을 받았다.

“선생님 오늘은 하루가 참 기쁘고 보람이 될 것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마음속 깊이 와서 닿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받은 이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이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기 때문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 그렇지만 그게 쉬운것은 아니지요”
불교신자인 그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귀한 일임을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 집안은 다 불교신자인데 먼친척중에 한사람이 목사님인 분이 있는데 일년이나 이년이나 가끔 만나면 그렇게 마음속에 와서 닿는 말을 그분으로부터도 들었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싶다고 했다. 영접기도는 같이 하지 못했지만 예수를 믿기로 다짐을 받고는 차에서 내렸다. 단 이십분동안의 대화였지만 차안에 주님의 역사하심이 충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를 변함없이 써주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1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