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평안

 

얼마 전에 1월 달에 어느 지방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오래전에 훈련을 받고 전도를 하던 목사님이셨습니다. 만날 때마다 순수한 믿음이 항상 남달랐던 목사님이었습니다. 역에서 저를 태우고 교회로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장로님 요즈음 교회가, 교회가 아닙니다.”라는 말씀부터 시작해서 같이 전도하시던 목사님이 은퇴를 하시면서 젊은 목사가 오면 전도를 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 대단하시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사명이 없어서 그렇지요, 소명도 의심이 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목회자들의 직업의식도 말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집회 중에 목사님은 이전에 들었던 전도훈련을 받은 경험을 나누었다. 여러 번 들은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분에게는 전도훈련을 받은 기억이 주님을 만난 십자가의 경험 다음으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가 대강 이러합니다.
오래전에 강남의 어느 교회에서 부교역자생활을 하다가 시골교회로 부임을 해 왔습니다. 그 시골교회는 어른 7명 정도가 교인의 전부인 실정이었습니다. 전도를 해야겠다는 갈급함 때문에 수소문을 해서 전도의 말씀을 잘 전한다는 분을 모시고 부흥회를 하는데 정작 그 강사님은 전도에 관한 말씀보다는 다른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강사를 잘못 모셨다는 실망감가운데 집회 중에 어느 교인의 집에서 추도예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강사목사님이 자기를 추도예배에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부탁을 하더랍니다.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교인인데 왜 그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도 간곡히 부탁을 해서 같이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추도예배를 마치자 말자 자기에게 좀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시간을 주었더니 가족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더니 손을 들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남은 몇 사람을 데리고 잘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하는데 목사님은 잘 들리지도 않고 해서 방관자처럼 벽에 기대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분도 못되어서 한 사람이 울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두 번째 사람이 우는데 ‘아! 이것은 무엇이 있는 거구나.’ 하여서 다가앉아서 들으려고 하는데 이미 끝났다고 하더니 예수를 영접하는 기도를 시키더랍니다. 끝나고 나서 그 목사님에게 “아 내가 이거 배우려고 목사님을 초청했는데 이거는 안 가르쳐주고 다른 말씀만 전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십니까? 이제라도 이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했더니 그 목사님의 말씀이 “나도 돈을 주고 가서 배웠으니까 당신도 가서 돈을 주고 배우시오.”하면서 전화번호와 주소를 일러주는데 그것이 예수전도협회의 전화번호와 주소였다고 합니다.
부흥회가 끝이 나고 혼자가기에는 그러고 해서 같은 노회의 목사님에게 말을 해서 같이 훈련을 받으러 왔다고 합니다. 영등포 영신교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첫날과 둘째 날은 분위기도 생소하고 전도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갈 생각밖에는 안 나더랍니다. 그래서 같이 온 목사님에게 그만 가자고 하니까 그분이 기왕에 왔는데 다 마치고 가자고 해서 주저앉아 말씀을 듣다가 둘째 날 저녁 십자가복음에 깨지고 은혜를 받고나서 끝까지 참석을 하면서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교인들을 훈련을 받게 하고 교인들이 훈련을 받고 동네사람들의 영혼이 지옥 가는 것이 나무나 아파서 낮에는 논에서 밭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동네방네 다니면서 ‘예수천당’을 외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반발이 있는 가운데 어느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오니까 교회 문 앞에 동네사람들이 자가용과 트럭과 경륜기를 갖다 대고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저들을 각각 다 상대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어 담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네들 왜 이러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낮에 힘들도록 일하고 밤에 자는데 교인들이 ‘예수천당’을 외치니 쉬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여 너무나 힘이 들어 교회가 나가던지 우리가 나가던지 결판을 모려고 왔다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아니 우리가 그렇게 ‘예수천당’을 외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하는지를 알아나 보고 항의를 하던지 시위를 하던지 해야지 그이유도 모르고 이렇게 왔느냐고 책망을 했더니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교인들도 알다시피 당신들과 똑같이 논에서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당신들처럼 쉬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당신들의 영혼이 지옥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당신들을 사랑해서 이렇게 하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젊잖게 일러주었더니 단번에 그 사람이 고개를 조아리고 그런 줄 모르고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동네사람들을 설득을 해서 다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 후로 날마다 전도를 하면서 출석교인들이 150명이 되었는데 그들 중에 해마다 대도시로 150명씩 빠져 나가는데도 교회는 항상 150명의 출석교인들을 유지할 정도로 부흥이 되는 역사가 있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후에 대도시에서 어느 목사님이 목회를 그만두면서 후임자로 목사님을 청빙을 했는데 기도하고 응답을 받아서 대도시로 왔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도 전도훈련을 보내고 전도를 하면서 열심히 목회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교단에서 예수전도협회에 참여를 금지하라는 공문들이 수차례 내려오고 노회에서는 노방전도를 못하게 하고 하는 가운데 지나 놓고 하는 말이지만 마귀의 속임수에 속아서 전도를 중단하고 전도협회에도 오지 못하면서 최아무개에게도 가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교인들은 늘어나면서 멘토링이니 교회성장이다 두날개다를 하면서 교인들이 열심을 내어 하면서 열심을 내지 못하는 교인들과 갈라지고 그러면서 교회에 큰 시험이 들어 지난해 초에 교인들이 엄청나게 빠져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대형승용차를 타고 온 새로운 교인들이 교회를 짓자고 바람을 넣는 것을 주님의 역사인줄로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공명심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협회에 오지 못하면서도 이 복음 만큼은 놓지 않고 사셨습니다. 맏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며느리 감을 맞으면서도 세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결혼을 시키겠다고 하시면서 그중에 하나가 복음이 같아야하니까 예수전도협회의 훈련을 받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대로 며느리 감은 훈련을 받고 결혼을 하여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둘째 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숙소로 태워다 주시면서 목사님이 넌지시 질문을 해왔습니다.
“장로님 이전에 온 나라가 전도훈련을 막고 방방곡곡이 전도를 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 나갔을 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어요?”
“목사님 저는 마음이 안 아팠어요, 왜냐하면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거든요”
“.......”
“아파하시면 주님이 아파하셨지요.”
“.......”
“저는요, 예수를 믿고 경건훈련을 받는 중에 오래전에 자아가 없어졌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없어요.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원하고요, 내가 무엇을 기뻐하는 것도 없고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어요. 주님이 기뻐하시면 그래서 내가 그것을 기뻐하고 주님이 목표하시면 그것이 나의 목표가 되고요.”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집회가 금, 토, 일 삼일집회였기 때문에 주일날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11시 예배에 강단에 올라가 앉았는데 보지 못하던 교인들이 많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찬송을 인도하는 분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같이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두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어 강단에 올라가자마자 혹시 다른 교회 교인들이 왔느냐고 묻고는 말씀을 듣는 것이 믿음의 시작인데 담임목사님이 부흥회를 한다고 광고를 하는 것이 그냥 광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부르시는 부르심인데 그것을 멸시하는 것에 대한 책망이 강단에서 불을 뿜었습니다. 어저께 어느 목사님들과 교제를 하면서 요즘 교회가 권징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말을 나누었는데 나는 무서울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전하고 가겠다고 말을 하면서 여러분과 같은 교회 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와서 시간마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받았는데 이 교회 교인들이 부흥회 때에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물론 나름대로 다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 통할 것 같으냐? 에서가 왜 버림을 받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존중하여 순종했기 때문이다. 이삭이 어떻게 인생 역전을 이루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어떻게 복을 받았는가?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왕과 연합한 다섯왕을 파하여 이기고 돌아올 때에 멜기세덱을 만나서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드린 사실을 말하면서 승리하는 사람만이 드리는 것이 십일조의 특권임을 전하였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교인들이 회개를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 앞에서 말을 했습니다. 지난 연말에 기도를 하면서 주님이 새해 표어로서 로마서 12장 2절을 주셔서 “내가 먼저 변화되자”라는 표어를 정하고 ‘신년부흥회를 누구를 모시고 할까요?’ 기도하는 중에 이유빈 장로의 얼굴을 세 번이나 보여주셔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나눈 말이지만 목사님이 지난해에 교인들이 많이 나가고는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해준 말이 “목사님 그것은 열심히 하려다가 안 되어서 포기함으로부터 오는 평안이지요.” 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내가 예수전도협회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어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는 말에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와 같이 두 가지 평안이 있습니다. 내가 힘쓰고 애쓰고 열심히 하려던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에 나의 열심을 포기할 때에 오는 평안과 나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믿고 주님 안에서 포기하고 버림으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안에 주님이 사시는 삶을 살 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는 좌절로부터 오는 자포자기식의 평안이요, 하나는 이기든지 지든지 주님 안에 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육체의 열심은 좌절을 가져온다. 열심은 언제든지 마음의 평강을 빼앗아 갑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부터 오는 열심은 항상 주님의 평안으로 넘칩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교회성장의 열망과 야망을 포기할 때입니다.
교회를 하려고 하는 열심을 포기해야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교회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양을 먹이는 목회를 하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하려고 하고 교회를 크게 하려는 욕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근심으로 찌르고 되는 것도 없이 좌절하고 슬프게 하였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자기영혼을 경작(cultivation)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영혼도 경작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이에게는 항상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고 사는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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