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각,바른해석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받는 길
많은 사람들이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창세기 22장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독자를 하나님께 바친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주석가들이나 신학자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목사들은 그렇게 설교했다. 그리고 교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행위로 받아들이고 자기들은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는 아브라함의 믿음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마귀의 속임수에 빠졌다. 그러나 그것은 행위를 중시하는 율법주의적 사상으로부터 나온 해석이다. 율법주의는 마귀적인 사상이다. 율법적인 생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이며 그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17장에서 할례의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교회를 주신다. 12장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방황하는 생활을 살은 것은 그에게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13장에서 롯이 소돔으로 떠난 후에 아브라함은 상심을 한다. 14장에서 그돌라오멜왕과 연합한 바벨론의 네나라 연합군을 격파하고 사로잡혀 갔던 조카 롯의 가족을 구출해 오는 승리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아브라함은 아직 방황을 하는 믿음으로 살았다. 하나님은 15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롭다함을 받은 믿음인 것을 확신을 시켜 주셨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교회가 없었다. 그는 그동안도 교회생활을 하지 못해서 애굽으로 벧엘로 마므레로 방황을 했다. 그리고 그 방황생활을 이기지 못한 연약한 롯은 소돔으로 가서 정착을 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17장에서 하나님은 할례의 언약을 주심으로 비로소 교회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 후로 아브라함은 교회생활을 했지만 그 교회생활을 잘못해서 죄를 짓는다. 오늘날도 교회안에 있는 성도들이 죄를 짓는 것은 교회생활을 잘못하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것이다. 번제를 바치는 것은 죄를 사함받기 위함이다. 죄는 언제든지 용서를 받아야 없어지며 그래야 언제든지 거룩함을 회복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교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백 살에 주신 자식을 번제로 바칠 정도로 속죄는 더 중요하고 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과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의 날마다 짓는 죄를 사하여 깨끗하게 하심으로 정결하게 하셔서 다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을 얻은 사람이지만 교회가 없기 때문에 그의 영혼도 육체도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었다. 15장에서 의인으로서 구원의 확신을 확인받고도 그는 16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다. 구약의 믿음은 후손을 믿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 난 자로부터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가 오셔서 자기를 구원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는 이 믿음이 있었지만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 믿음이 흔들리고 부족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길로 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17장에서 할례의 교회를 주신 것이다. 교회는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은혜이다. 영생을 얻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교회를 주심으로 그 교회안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믿음이 자라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교회가 없이는 세상에서는 믿음을 지킬 수도 없고 교회가 없이는 믿음이 자라고 강하여 지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교회생활을 해야 믿음이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자라고 강해져야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세상을 이기는 것이 본능이며 본분이다. 교회는 세상을 이기는 것이 체질이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가진 것이 교회이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교회의 영광이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영생을 얻은 자이며 이삭은 그의 믿음의 후사로서 역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아브라함은 목회자로서 이삭의 믿음을 돕는 자이며 이삭은 믿음이 자라야하는 초신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7장에서 할례교회를 받고도 믿음이 연약하고 흔들리는 믿음으로 살았다. 18장의 교회생활은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연약한 믿음을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19장에서 소돔이 멸망을 하며 교회생활을 등졌던 롯은 겨우 불 가운데서 건짐을 받으나 거룩한 교회 안으로 들어 올수 없었다. 20장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연약하여 사람을 두려워하고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 아내를 아비멜렉에게 빼앗기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역사하심으로 다시 찾아 주신다. 22장에서 이삭을 낳고 그의 이전에 잘못된 믿음의 결과인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교회와 믿음의 후사인 이삭이 크게 훼방을 받고 조롱을 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일은 오늘날도 교회 안에 있는 또 다른 많은 하갈들과 이스마엘들로 인하여 우리의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대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하여 이스마엘에게 함께 하셔서 활을 잘 쏘는 재능을 주심으로 광야에서 강한 자가 되고 애굽여인을 취하여 가정을 이루고 열두방백의 큰 나라의 조상이 된다.(그러나 그것은 세상에서 다 없어질 잠시 잠깐의 일이며 헛된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이스마엘을 잠시 잠깐 돌보아 주신 것일 뿐이다)
이 일후에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함께 하시도다”라고 고백을 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내어 쫓은 이스마엘까지도 잘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 앞에 자기들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아브라함과 평화의 약조를 구걸하여 맺는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결과로 브엘세바 우물을 얻어 거기 정착을 하여 에셀나무를 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찬송하며 지낸다.
죄를 짓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의 의하여 높임을 받고 모처럼 찾아 온 육신의 평안함과 또 백살에 주신 이삭을 사랑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이전 같지 않고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교만하여져서 죄를 짓는다.
교회생활을 아무리 잘해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 노아도 죄를 지었고 모세도 죄를 지었으며 다윗도 죄를 지었으며 솔로몬도 죄를 지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아는 솔로몬은 백성들이 지은 죄를 사함을 받는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한다.
(왕상 8:46전)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교회생활을 잘하면 죄를 안 짓게 하는 것이 할례의 언약이다. 그것은 죄를 안 짓는 거룩함이다. 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는 죄를 사함받음으로 거룩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하시고 사하여 주심으로 여전히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연약할수록 더욱 더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기계처럼 예배당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듣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이 교회생활이 아니다. 교회생활은 말씀으로 사는 인격들과 접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며 성도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거룩한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회생활을 살지 않으면 교회안에서도 교만해지고 교만하면 반드시 죄가 찾아 온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죄를 짓는 교만보다 더 악한 것은 지은 죄를 용서받기를 싫어하고 죄를 사해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식이 밖에서 놀다가 몸을 더럽히고 옷을 더럽히는 것도 잘못하는 것이지만 더러워진 것을 씻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이 부모를 더 진노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질 때마다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원하시고 죄로 더러워진 영혼을 씻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죄를 지을 때마다 즉시 속죄 프로그램을 가동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로 가게 하시고 거기서 이삭을 바쳐서 죄를 속함 받는 번제를 드리라고 명령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다면 하나님은 옹졸하신 분이 된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빼앗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며 그것으로 자녀를 시험하는 것은 세상 죄인들도 하지 않는 비열한 짓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그가 지은 죄를 용서받으라고 명하신 것이다.
번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지은 죄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죄를 지을 때마다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의 은혜를 믿음으로 어린양을 번제로 드릴 때에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고 씻어 다시 새롭게 하신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죄는 백 살에 주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갚을 수 있는 무서운 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는 하나님의 속죄하심의 사랑을 알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 것이다. 반대로 죄를 짓고도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준비하신 수양을 주셔서 이삭을 대신하여 드림으로 죄를 용서받게 하신다.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백 살에 주신 귀한 자식을 죽여 번제로 드릴 만한 죄를 지은 것이 있어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아들을 대속물로 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일을 통해서 자기의 죄는 백 살에 낳은 독자를 번제로 드려서도 갚을 수 없는 죄임을 깨달았다.
(미 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아브라함이 지은 죄는 자기의 아들을 번제로 드려도 갚을 수 없는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짓는 크고 작은 흔한 죄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피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서 죄를 없이해주시는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죄함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을 주신 것도 은혜이지만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도 은혜이다.
의인은 죄를 지어도 은혜안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죄의 프로그램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주신 것도 은혜로 주신 것이며 속죄도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아브라함 부자는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은혜가 충만 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신 것도 은혜요 순종하게 하신 것도 은혜이며 수양을 미리 준비하심으로 그것을 대속물로 드려 지은 죄를 용서받게 하신 것도 은혜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함께 구원받은 우리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생활을 하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여전히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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