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는 말씀*

이번 주는 태국선교여행으로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성된 설교문을 올립니다.

 

내용의 주안점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집에 찾아와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엎드려 절을 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가 아닌 사람 곧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이 드리는 예배를 황당하게 생각하십니다. 아버지면 반드시 알아야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께 예배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 아버지를 안다 하여도 아버이와 함께 사는 생활이 없이 의식적인 예배를 예배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엊그제 오래전에 훈련을 받고 은퇴를 하신 목사님 두 분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오늘날 교회 안에를 보면 불신자들이 거의 다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기회에 나 자신이 자녀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고 확증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버지가 받으시는 예배

 

 

본문 : 4:19-26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4:19-26)

 

 

들어가는 말

 

오늘날 교회 안에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는 많이 있다. 그리고 정한 시간에 일주일에서 십수 번식 예배를 드린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예배의 참석을 독려하며 예배에 빠지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한다. 그래서 요즈음에 와서는 사람들이 어느새 예배를 드리는 것이 믿음인 것처럼 착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예배는 드리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지를 확신할 수 없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들은 예배를 위한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있는데 자신이 빠진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 중에 찬송과 기도 등, 모든 순서가 자신의 생활과는 무관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설교자는 자기도 없고 생활도 없고 자기 믿음도 없는 설교를 하기가 일수이다.

교회는 아무나 들어 올수 있다. 예배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드리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도 함부로 드나들고 예배도 생각 없이 막 드려서는 결국에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교회에서는 인정을 받았으나 하나님 아버지께는 물리침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시대와 같이 지금도 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받지 못할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허다하게 많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받으시든지 아니 받으시든지 상관이 없이 신경조차 쓰지 않고 일방적인 사람위주의 예배를 드리는 이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면서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을 하나라도 순종하는 생활이 없이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참으로 옛날에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지옥불에 떨어진 사람들과 같이 오늘날도 애꿎게 교회만 다니다가 아무 의미도 없이 예배만 되풀이하여 드리다가 버림받고 지옥 갈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까를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예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시고 있음을 깨닫고 바른 예배 이전에 바른 예배자가 되는 은혜를 받고자 한다.

 

 

2. 수가성 여인

 

수가성 여인은 사마리아 여인이다. 사마리아는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위치한 지방이다. 사마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 오므리 왕 이후로 우상의 총 본산으로 여겨졌으며 아합 왕 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살만에셀에 의해 멸망을 당한 후에 열지파가 앗수르 여러 지방으로 분산되고 이방인들이 이주해 옴으로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혼혈상태가 되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유다가 돌아와서 스룹바벨 성전을 세운 에스라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오는 것을 금하자 그들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믿는 종교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BC 128년에는 힐카누스에 의하여 그리심산 성전이 파괴되었다. 그로인하여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여기고 서로 대적하는 관계에 있었다.

수가성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지역인 세겜에서 야곱이 살 때에 팠던 우물로 추정이 되며 수가성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이 우물에서 이루어졌다.

수가성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두었던 방탕한 여자이었으며 지금은 가다 오다 만난 아무남자하고 같이 살고 있는 여자이었다. 주님과의 대화 속에 숨기고 싶은 자기의 모습과 지나간 죄악 된 생활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하여 그 여인은 주님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일컬으며 그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인 논쟁(religious controversy)이었던 예배하는 장소의 문제로 화제를 옮기려고 애를 쓴다.

 

 

3. 예배할 장소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19-20)

 

수가성 여인은 주님이 자기의 과거와 현실을 다 알고 계시는 사실을 알고 주님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항상 논쟁이 된 예배의 장소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이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서로 자기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이 바른 장소라고 주장을 했다. 그래서 수가성 여인은 예배의 장소를 두고 싸웠던 오랜 논쟁을 제시함으로 주님의 관심을 자기의 죄로부터 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4. 예배할 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4:21)

 

그러나 주님은 여자에게 예배의 장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에서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예배는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는 자녀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예배는 유대인이냐 사마리인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이냐 사미리아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그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말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어느 누구라도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가짜 예배요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는 곧 너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이다. 한사람의 죄인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때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인 것이다.

 

5. 아는 것을 예배해야 함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4:22)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는 아마도 여자가 말한 우리 조상들은 이산에서 예배하였는데라는 말을 들어서 오랫동안 그들이 행해온 우상숭배 의식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요, 우상에게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우상숭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 10:20)

 

바울이 아덴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하는 단을 보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복음을 전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17:22-23)

 

이와 같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교회 안에 있으나 교회밖에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그들은 우상이나 귀신에게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교회당 안에서 모두 같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도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무엇에게 드리는 예배가 될 뿐이다.

 

 

6. 예배의 방법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23-24)

 

자녀들이 아버지께 드리는 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신령과 진정은 헬라어의 본뜻은 성령과 진리이다. 그 말은 예배는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이며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성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는 무엇인가? 그 반대 개념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의 반대는 육신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그것은 예배시간에 몸만 참석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동일한 순간에 몸만 예배당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말한다.

도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반대개념은 무엇인가? 지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지식은 알고 깨닫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지만 진리는 사는 것 곧 생활이 있는 것이다. 진리가 아닌 지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의 생각 속에 지식 속에는 있지만 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곧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자녀의 생활이 없는 사람이다. 또 옛날에 은혜를 받았어도 오늘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는 자녀의 생활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진리로 사는 생활의 대상이 아니다. 어저께 진리로 살았어도 오늘 아버지와 함께 사는 생활이 없으면 그것도 지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자녀인 성도가 아버지와 자녀의 생활을 공유할 때에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때가 곧 이 때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주님이 수가성여인을 만나 주신 순간이 곧 그여인으로 예수를 믿어 하나님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슴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에서 찾으시느니라는 현재동사이다. 곧 지금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가성 여인을 만난 지금 이시간에 아버지께서 에수를 보내시사 그여인을 자녀로 삼으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이유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을 하신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수 없는 이유가 그와같은 이유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1:19)

 

그렇게 육에 속한 사람 곧 육으로 예배를 드리고 지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만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기를 싫어하고 사모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4)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미련한 것으로 보이고 유대인들과 같은 종교인들은 십자가를 거리끼는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

 

그렇기 때문에 육으로 예배를 드리고 지식으로 곧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아는 것으로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구원받는 도를 싫어하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지 않는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39-40)

 

그 옛날 유대인들과 같이 오늘날 교회 안에 이와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예수 없이도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영생이 없이도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그리스도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4:25-26)

 

여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도 메시야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실을 말했다. 그 때에 주님은 그에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고 하심으로 여자의 믿음을 도와주신다. 여자는 즉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증거를 한다.

 

8. 맺는 말

 

다시 말하지만 교회는 아무나 들어 올수 있다. 예배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드리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도 함부로 드나들고 예배도 생각 없이 막 드려서는 결국에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교회에서는 인정을 받았으나 하나님 아버지께는 물리침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오늘날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허다히 많이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바리새인들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여겼으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자들이었음을 기억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15)

 

우리는 혹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지를 살펴봄으로 버림받는 자가 되지 않도록 불쌍히 여김을 받는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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