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강의 이유빈 장로
정리 고병훈 집사

(요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밤에 예수께 와서’ 니고데모는 아마 유대인들하고 다른 바리새인들하고 논쟁하고 싸우기 싫어가지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밤중에 은밀하게 찾아왔을 것이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주님을 좀 맘 놓고 대화를 했으면 낮에는 바쁘시니까 밤에 좀 시간을 넉넉하게 가지고 대화를 했으면 그런 마음 때문에 그가 밤에 왔던 것으로다가 생각이 된다.

2절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분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다른 바리새인들과 달리 조금 전에 성전에서 만났던 바리새인들은 네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하니 표적이 무슨 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그랬지만 니고데모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 그가 보통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8:23절에 요한복음 8장 23절에 보면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느니라. 주님은 오신 곳이 다르다. 우리는 육체는 흙으로부터 왔지만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아니하면 은 2번이라고 되어있는데 밑에 보면 ‘혹 위에서’ 윌리암즈나 벡이라는 사람이 번역할 때는 아주 거듭나면 이라는 얘기를 없애 버리고 그 성경 번역 자체를 사람이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다 라고 바꿔 버렸다. 그런 면에서 “거듭난다”born again 이것은 조금 위로부터 난다는 말에 의하면 좀 간접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더 확실하고 자세한 표현이 무엇인가 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 육신이 죽은 다음에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가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한다. 그래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육체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천당이 없다 하나님 봤냐 하는 사람들이 다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요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니고데모가 깨닫는 거듭남의 개념은 육신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며 늙으면 어떻게 거듭납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가야 됩니까? 이 말은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태어나야 된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서인지 늙으면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 날수 있삽나이까? 라고 물어보았다. 이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관원이요 공회원이다. 그런데 배울 것을 다 배운 사람인데 아무리 배우고 지식이 많아도 영적인 지식하고는 별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속담에 ‘죽은 사자가 산 개만도 못하다’ 라고 하는데 죽은 사람이 박사학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영적으로 산 사람이 훨씬 났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 세례 받고 성령 받는 것, 다시 말해서 회개하고 성령 받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는 얘기다. ‘물은 세례니’ 물은 회개하고 세례 받는 것을 말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어머니 배속에서 나온 것은 육인 몸이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되겠다는 말은 성령으로 나는 것이고 영적인 생명을 받는 것이다.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육신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바람이 소리는 들리지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걸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반듯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육신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변하면 분명히 변한 것이 보인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변한것은 보이는데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왜냐면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의 수준은 불신자들의 수준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나는 일이, 하나님으로 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요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한복음 9:30절 보면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 하는 도다. 여기서 ‘당신들’ 이라는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이 소경은 주님이 눈에다 흙을 발라서 고침 받은 사람이다. 이 소경이 눈을 뜨고 나서 놀란 사실은 자기는 그동안 육신의 소경이었는데 눈 뜬 장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소위 종교적으로 말하면 전문가들이고 가르치는 선생들인데 소경이 볼 때 이상한 것은 내 눈 을 뜨게 하신 분을 이들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 하는 것임을 이상히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 후에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그러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며 눈뜬 자를 “쫓아내어 보내니...” 백성에게 하나님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보는 것처럼 니고데모에게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증거’ 주님이 그 안에서 일하시는 증거, 하나님의 증거, 또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말한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땅의 일’ 여기서 애기하는 주님의 땅의 일이란 육체를 가진 사람이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거듭나는 일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일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일이다. 성령을 받는 일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이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너희가 믿지 못하거든 하물며 하늘에 일을 말하면 너희가 어떠하게 믿겠냐?

‘곧 인자 외에는’ 이것을 1번이라고 해서 다른 사본에 기록되기를 ‘곧 하늘에 있는 인자’ 이렇게 되어 있다. 이 말은 하늘에 있는 인자가 내려왔고 또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아는 자가 인자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는 것은 저주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받아야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서 죄 짐을 벗기시고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와 심판을 옮기신 것을 얘기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을 때 백성들이 그걸 쳐다봄으로 나음을 입은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인 인 내 모습으로 들렸을 때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작은 복음이라고 얘기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고 이처럼 사랑했는데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했고 그 이유는 ‘이는’ 때문이다.

‘이는’ 성경에 이는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앞서 말한 것에 대한 이유를 얘기할 때 이는 이라는 말을 한다.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독생자의 이름’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신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신 18:19)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이 말씀은 나와 같은 선지자인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한 것인데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심판이고 믿지 않는 것이 바로 다른 번역에 보면 정죄를 받은 것을 말하고 있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그 정죄는 죄를 짓 는 것이 물론 정죄지만 주님이 오셨을 때 죄를 짓는 것이 정죄가 아니라 믿지 않는 것이 정죄를 당하는 것이다. 죄를 졌기 때문에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빛을 미워하여’ 이유는 죄를 감추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죄를 감추기를 원하고 죄를 합리화 시키고 빛 가운데 나오기보다 감추길 원하고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20절과 21절은 악을 행하는 자와 진리를 좇는 자가 대칭형으로 되어 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죄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한다. 빛 가운데 나타날까봐 두려워하고 심판받을까봐 두려워한다.

‘그 행위’는 자기가 지은 죄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빛 가운데 나오는 이유는 속함을 얻은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드러내고 나타내기 위해서 빛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죄를 자백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용서 받기 위해서 자백 한다는 것보다 내가 사함 받은 것이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고 세상에도 드러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빛 가운데 오지 않는 사람, 어둠 가운데 거하는 사람,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죄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빛으로 오지 아니하는 것이다. 빛으로 오는 사람은 사함 받은 사실과 십자가의 사실이 자기를 통해서 드러나기 위해서 빛 가운데 온다. 결국 그 행위는 빛 가운데 나오면 자기의 행위가 자백되어지고 드러나는 것이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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