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이 없다며 다니던 교회를 떠나 서울의 유명한 교회로 옮긴 장로부부가 새로 옮긴 교회의 자랑을 하면서 성경공부가 어떻고 구역예배가 어떻고 쉬지 않고 교회자랑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측은한 생각이 올라왔다. 왜 그교회로 간후에 내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의 자랑이 없는가? 라는 아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왜 오늘날의 교인들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 교회자랑이나 하고 내가 만난 주님 나를 변화시키신 주님, 나와 함께 사시는 주님을 자랑할 것이 없어야만 하는가? 주님을 만나기전의 삶과 주님을 만나고 나서의 삶을 비교하고 또 날마다 주님을 따라가면서 어제와 오늘의 달라진 인격을 비교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자랑해야하는데 이교회와 저교회를 비교하고 내가 다녔던 교회와 지금 다니는 교회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보는 것처럼 슬픈일이 없다. 주님안에서 무엇이 되었는가를 자랑하고 무엇이 되려고 기도하고 매달리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이와같이 교회가 또는 교회안의 교인들이 내용도 결과도 없이 단지 무엇을 하는가에 더 집착을 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의 현실이다.
전도하는 교회라는둥 선교하는 교회라는 둥의 행위를 자랑을 하면서도 행위의 열매를 말하지 못하고 큰교회니 목회에 성공을 했느니 하면서 다른 교회 교인들이 옮겨와도 교회만 커지면 된다는 생각에 교회가 세상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며 질적으로나 냉용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는지 불신자들에게 소금으로서 빛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아니면 욕을 먹는지 상관하지 아니한다.
교회성장에 미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지 모독함을 받고 있는지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교회만 크게 하고 교인들만 모으면 된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인들을 모으기 위해 예배를 교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예배시간을 옮기는 것에 지나쳐서 모이기를 폐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금요철야를 심야집회로 하다가 어느교회는 수요예배와 통폐합을 하였다 한다. 수요일에 삼일기도회라는 명목이 기도할수 없는 상태로 전락을 하자 수요예배를 드리다가 아예 성경공부로 바뀐 교회도 적지 아니하다.
한국교회가 큰 침체와 위기의 함정에 빠져 있다. 말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자도 많은데 본받을 인격이 없다. 그동안 성공했다고 훌륭하다고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방인들가운데 모독함을 받게 하는데에 앞장을 서고 있다. 세상의 도덕성조차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장로로 안수하여 세운일이 오래되었다. 주초를 끊지 못한 집사들이 수두룩하여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성경을 한번도 읽지 못한 사람들이 목사안수를 받은 지가 오래되었다. 마음은 물론이요 입술의 할례를 받지 못한 적지 않은 이들이 목사로 행세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그대로 본받고 싶은 인격이 목회자들사이에서 찾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성경말씀대로 사는 인격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묵시가 없어 남의 설교집을 베끼던지 아니면 돈을 받고 설교를 사서 옮겨주는 기계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 자신도 안 변하고 자신의 가정도 변화가 없이 교인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도 힘든일이 아닐수가 없을 것이다. 강단에서 거짓말을 하고자 하지 않아도 스스로 전하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앞에나 교회앞에 교인들에게 자동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인품이 훌륭한 사람도 빚을 갚겠다고 약속을 하는 말이 돈이 없으면 물가불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슴대로 사는 것도 살지 못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공허한 마음에 이세미나 저세미나 돌아다니며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열을 올리는 것도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 된 것을 다 알고 있다. 열두해를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과 같이 많은 의원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도 다 허비한 처량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사람을 따라간 사람들의 결국은 다 이와같이 비참해질 수밖에 없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점점 더 비참함가운데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올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시던 주님의 질문앞에 할말이 없는 한국교회가 되어 버린것은 아무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 된지가 오래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국교회는 그동안 무엇을 하느냐에만 힘을 기울였지 무엇이 되는냐에는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하기전에 무엇이 되어야 한다. 전도를 하고 사람을 낚는 일을 하기 전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다시말해서 한국교회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상실한 것이다. 제자훈련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지는 성경공부는 제자훈련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공부를 싫어하는 교인들에게 성경공부에 참석하게 하기 위해 보다 참석을 촉진시키기 위한 더 매력적인 이름을 찾는 이들에게 이용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제자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3,4)

삼년반동안 제자들을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셨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 결과가 무엇인가 주님안에 항상 거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전도하고 열매를 맺는 것은 주님안에 항상 거하는 생활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이 참 신앙생활이다. 교회다니면서 또는 교회일을 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변질되고 뒤집어 지는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신앙생활이 아닌 것이다. 주님안에 항상 거하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생활이 결핍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안에 항상 거하도록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제자훈련이 아니다. 만일 누가 그런 제자훈련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누가 감히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앞에서 제자훈련이라고 말이라도 할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다. 한국교회의 비극과 참상이 무엇인가? 그동안 이렇게 말씀으로 거룩해지는 경건생활이 빠진 교회생활만을 가르쳐 왔다. 그래서 교인들도 주님을 닮지 못해 아파하고 부르짖어야 함에도 그와같은 영적인 아픔을 알지도 못하고 영적성장의 부담도 없이 교회에서도 무슨 일을 열심히 하고 봉사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할수 있는 것처럼 행위를 강조하는 교회적인 환경속에서 믿음보다는 행위를 요구당하는 삶을 살아왔다. 강단에서조차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지고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교인들을 교회안에 앉혀 놓고 말씀으로 사는 생활 곧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아닌 행위로서의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가르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교인들을 속여 왔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교회가 세상에 자신있게 내어놓을 만한 인격의 품질을 가진 사람이 없는 교회로 전락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세상에서 영적인 적응력 곧 거룩함으로 세상을 감화할수 있는 감화력을 상실한 교회는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다. 전도의 대상이 세상으로부터 등돌림을 당한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난 한해동안 3000개가 넘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중에 500개가 넘는 교회가 개척교회나 상가교회가 아닌 기성교회라고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커녕 페업을 하는 어부들이 속출을 했다는 말이다. 이이야기는 문을 닫지 않은 교회는 저들보다 잘한 것이다라고 절대로 말할수 없는 것에 그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달리 교회는 외형적으로 유지한다고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는 볼수 없기 때문이다. 이세상에서 한교회라도 문을 닫는 다면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교회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으로부터 등돌림을 당하기전에 하나님께로부터 등돌림을 당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더 이상 쓰실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쓰실수 없는 이유는 거룩함의 상실이다. 거룩함의 상실은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온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내용과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의 거룩함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우리를 죄악에서 구속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곧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니이 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일하심이 무엇인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 무엇으로 거룩하게 하시는가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심을 날마다 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에 합당치 못한 거스리는 삶을 사는 악함에 빠져 있는 것이다. 실상은 하나님이 등을 돌리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림으로 스스로 버림이 된 것이다.

이제는 허망한 생각들을 버리고 다소곳이 주님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방인들이 허망함으로 행하듯한 교회성장주의를 버리고 이제는 영혼을 성장시키는 일에 전심전력을 해야 한다 누구의 영혼을 성장시키기 이전에 자기의 영혼이 주안에서 자라나고 성장하기 위해 골방으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쓸데 없고 유익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배제하고 이제는 하나님앞에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 하나님이 나하나를 말씀으로 다루시고 견책하시고 책망하시며 한말씀 한말씀 그렇게 살지 못하는것 때문에 눈물 콧물흘리며 통곡하며 부르짖고 애원하는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 행위주의를 버리고 내가 할수 없는 것을 하시는 주님의 수술대위에 나를 드리고 그의 날카로운 말씀의 칼로 나를 쪼개고 주님과 맞지 않고 거스리는 부분을 각을 뜨시도록 나를 드려야할 때가 왔다. 내가 주님께 무엇인가를 하여 그의 환심을 구하려던 어리석음을 버리고 이제는 내가 할수 없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그의 발앞에 엎드리어 부르짖을 때가 온 것이다.

영혼성장이 없는 교회성장은 허무하고 슬픈 것이다. 영혼이 성장하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이 되는 것이다. 믿는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교회가 추구해야할 것은 전도이전에 교인을 늘리려는 것 이전에 각사람의 영혼이 주님앞에 바로 세우는 영혼을 성장시키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17.8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