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광주집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지난 12월초에 있었던 광주집회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지 않으면 아니 될 것 같아 글을 쓴다.

제목과 같이 광주집회는 예사스럽지 않은 집회였다.
합동측교단의 교회였는데 전도훈련을 받지 않은 교회에서 목사님이 자신의 처남부부가 예수전도협회에서 은혜를 받고 파괴되기 직전의 가정이 회복된 일과 그분들의 권면에 집회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기도를 하던 중에 늦은 여름쯤에 전화를 해서 집회날짜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교인 중에 공직에 있는 젊은 집사가 집회를 며칠을 앞에 놓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이유빈장로를 비방하는 글을 읽고 목사님에게 이러이러한 말들이 인터넷에 떠도는데 집회를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아무 생각 없이 그 집사에게 “야 임마!”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더니 아무 소리 없이 물러갔다고 한다. 그렇게 보내 놓고는 한쪽 구석에 찝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노회 어른 목사님을 찾아 갔다고 한다.

“저 목사님 이유빈장로를 모시고 부흥회를 하려고 하는데 교인 중에 한사람이 인터넷에서 이러이러한 글들을 보고 찾아와서 집회를 해도 되느냐고 물어서 일방적으로 입을 다물게는 하였는데 정말 이 집회를 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라고 여쭈었더니 그 목사님이 질문을 하더란다.

“감리교회가 이단이야 아니야?”
“아니지요”
“그리고 장로교목사 서재에 감리교목사가 쓴 책이 있어 없어?”
“있지요”
“그럼 그냥집회를 해”

그런 대답을 듣고 비로소 담대한 마음에 집회를 준비하고 시작을 했다고 한다.

집회를 시작하면서 영적인 내용도 없고 실재도 없는 감정에만 호소하는 복음성가를 열심히 부르는 모습들이 안쓰럽기가 짝이 없었다.
막연한 소원을 아뢰는 그런 노래들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는가라는 생각도 들고 자기생활과는 상관이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얼마나 아픔이 되겠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옛날 바알선지자들이 막연한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한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당회장 목사님은 강단에서 농담의 말과 희롱의 말을 거침없이 내 놓기에 바쁘고 사석에서도 우스갯소리를 즐겨하는 것 같았다. 강단에서도 거리낌이 없는 농담을 하는 광경에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 저게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면서도 사실과는 상관이 없이 교인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거듭해서 해주는 목사님의 모습을 볼 때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사실이 아닌 것을 듣기 좋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요 긍정이 아니라 부정(否定)의 말이다.”

말하자면 거룩한 강단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며 교인들을 말로서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면서 교인들이 십자가의 은혜에 서서히 눈을 떠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자기들의 참담한 영적인 현실을 주님이 하나씩 하나씩 보여 주시는 역사가 일어날 때에 적지 않은 이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씀을 듣기 시작 했다.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점차 진지해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시간마다 말씀이 끝나면 자신의 이중적인 생활과 위선된 모습들을 괴로운 마음으로 교인들 앞에 고백을 하면서 아파하고 회개를 했다.

첫 시간에는 우리의 죄를 가지고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점차 자기의 기도를 하고 자기 죄를 아파하는 기도를 하면서 회중에게 회개의 영이 임하기를 시작을 했다. 악하고 게으른 신앙생활의 실제를 내어 놓고 아파하면서 기도를 하는 중에 교인들의 어둡고 창백했던 얼굴들이 밝아지고 오랜만에 흘리는 십자가의 눈물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기뻐하는 모습들이 현저하게 보이기를 시작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자기가 만드는 물건이 소비자가 사용하는 중에 고장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자기가 판 물건을 사후에 수리해주기 위해 애프터서비스를 해주는 것과 같이 주님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피조물로 재창조하셨지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이 죄를 안 지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는 말씀과 그래서 영적인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성령을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시고 그 아들의 피로서 항상 정결하게 씻으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전하면서 죄를 깨닫는 것도 성령의 역사요 그 죄를 자복하고 씻김을 받는 것도 성령의 역사임을 전하였다.
반면에 죄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요 죄를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귀의 훼방이요 죄를 씻지 못하도록 감추고 숨기도록 속이는 것도 마귀의 역사임을 말씀을 전할 때에 시간마다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렇게 마귀에게 속으면 지레 말씀을 안보고 기도를 안 하고 전도를 거부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안하는 것이 아님을 전할 때에 교인들이 숨도 쉬지 못하는 듯 말씀을 들으면서 탄식소리가 흘러 나왔다.

오래전에 훈련을 받고 십년동안 보지 못하던 목사님부부를 만나서 교제하는 기쁨도 가졌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십 년 전의 나와 협회밖에는 말을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만을 머리가 아프도록 했다.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참아하지 못했다. 바울도 뒤에 것은 잊어버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앉아서 다 끝난 전쟁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옛날에 훈련을 받고 전도를 하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계속을 했다. 우리는 아직도 전투를 치루고 있는 십자가 군병들인데 그와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정신이 없는 일인지를 아는 어느 목사님이 “목사님이 알고 있는 장로님은 지금의 장로님이 아닙니다. 목사님 십 년 전 이후의 십년을 알지 못하면 그만하십시오.”라고 권면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십년, 십오 년, 이십 년 전의 이야기는 알지만 지난 십년동안 마귀와 치열한 전투를 하며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은 사람에게 이전의 자기중심적인 아름다운 추억거리나 말하는 것은 어쩌면 그 목사님에게 아픔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가하면 그 목사님의 사모님은 장로님이 엊그제 만난 것처럼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를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목사님부부도 협회를 주님이 도구로 쓰시지 않았다면 가정도 부부관계도 성립이 안 되었을 정도로 은혜를 많이 받은 분들이었다.

이번집회에는 특별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다. 한 두 명씩이지만 여러 교회에서 참석을 했다. 교회의 위치가 광주 외곽이었으나 시내에 있는 교인들이 참석을 했다. 여러 교회도 교회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생소한 교회이름들이었다. 이 십자가의 복음에 목마른 심령들이 살길을 찾아오도록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인도하신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중에 어느 여전도사님은 첫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예의 비방하는 글들을 읽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담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첫 시간말씀을 들어보니 이렇게 깨끗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다시없는데 그런 비방을 왜 들어야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단다. 다른 목사님을 소개를 받아 여러 시간을 상담을 하는 중에 오해가 풀리고 깨닫는 역사도 있었다고 한다.

집회를 마치고 목사님에게 어느 목사님이 1월에 있는 목회자훈련에 같이 참석할 것을 권면했다.
“예 노력해 보겠습니다.”
옆에 있었던 내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그렇게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도 그런 대답밖에 안나옵니까?”
“......”
어리둥절해서 나를 쳐다본다.
“노력해서 됩니까? 믿음이 뭐예요? ‘예, 주님이 참석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해야지요.”
“예”

스스로 노력을 하는 것과 은혜를 구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익숙해 있고 교인들에게 그와 같은 열심을 강요해 온 것이 교회안의 은혜를 갉아 먹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는 어두움가운데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의 현실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되지 않는다.

장로님들에게 전도훈련에 참석할 것을 권면했다. 교인들에게도 권면을 했는데 그들 마음속에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한국교회가 다시 살 수 있는 소망을 그들의 얼굴과 표정에서 읽을 수가 있었던 집회였다.

아무쪼록 광주집회를 통해 복음에 귀가 열린 교회와 교인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거룩함의 은혜를 받음으로 열매가 풍성한 교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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