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훈련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말씀만을 전하는 세미나가 쉬운일이 아님을 다시한번 절감을 하였다.

스마트폰세대의 아이들, 오락에 중독되다 시피한 아이들에게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앞에 자신을 보게하고 회개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도 집에서도 복음의 인격을 보지 못하고 부모들도 말씀으로 전심을 다하여 살지 않는 환경속에서 온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신앙양심상 주님의 마음을 알면서 그아이들에게 육신에 맞추어 주는 말과 프로그램을 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임에 틀림이없는 일이다. 들어도 전해야 하고 안들어도 전해야 한다.

 

부모가 하나님앞에 진실하게 살지 않으면 아이들도 하나님앞에 진실하게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부모가 일상에서 하나님아버지 없이 사는 집사고 장로라면 아이들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영적인 고아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특히 여러본 온 아이들가운데 억지로 온 아이들이 거의 다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가운데 아픔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대장님들의 눈물과 기도로  하나님은 항상 최선의 것을 주셔서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그들의 속에 있는 것을 내오 놓게 하시고 영혼들이 살아서 돌아 갔다.

이제는 그아이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가정의 몫이요 부모가 할일이요 교회가 맡아야 할 일이다.

 

아이들만이 그런것이 아니다. 며칠전에 어느교회에서는 여러 가정이 교회를 나갔다.

그중에 어떤이는 이유빈장로를 이단의 괴수라고 욕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비방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집사는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았는데 감당을 못해서 나간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아직 안나간 집사 한사람은 목사님입에서 전도여행 전자만 나오면 교회를 나간다고 간접협박까지 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뙤약볕 밑에서 그짓을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냐며 여름전도여행을 빗대어 비방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뙤약볕 밑에서의 그짓" 을 나도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가 주님께 받은 사명이고 성도의  본분이며 생활이고 주님이 엄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요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 순종할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계명을 지키리라"(요14 :15)

 

바울도 좋아서 전도하고 핍박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이복음을 위하여 순교까지 했다.

그는 부득불 할일이기 때문에 했다고 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주님이라면 아이들의 비위나 맞추어 주고 그들의 육신이나 즐겁게 해주는 말씀을 전하고 그런 프로그램들을 하고는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을 까?

주님이라면 여름날에 몸생각을 해서 그늘에 앉아서 성경공부나 하고 낮잠이나 재우는 일을 하실까?

 

주님은 이땅에서 어떻게 일을 하셨나?

주님은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아버지가 쉬지 않고 일하시는데 아들이 쉴수 있는가라는 말일 것이다.

주님은 온갖핍박과 거스림을 다 받으시면서 일했다.

수가성의 뙤약볕밑에서 사람들의 눈총이 두려워 정오에 물을 길러 나오는 여인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여인이 예수를 믿고 동네사람들에게 달려나가자 역시 뙤약볕밑에서 동네사람들이 몰려 오는 것을 보시면서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그들이 여자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을 앎이니라"(요 4 : 42)

 

주님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배척을 받았다. 사마리아의 죄인들에게도 출입을 금지당하는 모욕을 당하셨다. 제자들생각에는 하늘에서 불이라도 내려와 저들을 살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모욕을 당하였지만 주님은 그런 말을 하는 제자들을 끄짖으시며 잠잠히 몸을 돌이켜 가셨다.

주님은 나사렛 사람들이 주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구경거리로 삼고자 하는 모욕도 당하시고 그들에게 배척을 당하여 동네밖의 낭떠러지에 던짐을 받는 일도 당하셨다.

이땅에 나시던 날부터 죄인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셨던 주님은 삼십삼년동안을 고난을 받으시다가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 그리고 다시 사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이다.

 

그런 주님은 우리에게 넓은길로 가지 말고 좁은길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 13,14) 

 

문제는 구원을 받은 성도가 좁은 길을 싫어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육신의 길을 가고 육신이 편한길을 가고 정욕적인 길을 가면 그것은 아직도 영적인 생활이 무엇인지 모르고 육적생활에 빠져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좁은길에서 핍박을 받으며 모든 것을 희생하고 우리앞에 순교자들이 죽음을 기꺼이 당하면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자기는 좁은길을 거부한다면 한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생명을 얻게하는 주의 제자의 삶을 살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는가?

담임목사가 훈련을 받고 전도를 하다가 교회가 쪼개어진 일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교인들이 절반이 나가고 두교회가 되는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담임목사가 회개를 하자 회개를 싫어하는 교인들이 반기를 들고 목사를 쫓아내는 일들도 많이 있었다.

이미 교회안에 귀족들과 같이 몸을 아끼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교회안에서 힘을 쓰는 자리에 들어가 있기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일산의 어느교회는 아예 교회자체가 없어지기도 하였는데 그교회는 성가대원들끼리 간음을 하고 죄를 숨기고 교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는 교회이었다.

 

이십년은 족히 되었을법하다.

고신대강당을 빌려서 전도여행을 할 때의 일이었다.

침구도 없이 교실마다 시멘트바닥에서 잘 형편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디서 주워왔는지 라면상자 과자상자들을 깔고 잠을 잤다.

사람들마다 마음속에 내일아침은 올라가야지하는 마음으로 독기를 품고 잠에 들었다.

일본에서 온 여집사는 자기언니와 함께 잠을 자면서 이게 무슨 전도여행이냐 피난민이지하고 불평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고 했다.

 

그다음날 아침 집회시간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얼굴이 불만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말씀을 전하면서 주님이 전도하면서 당하신 고통을 그대로 전달하는 말씀이 전하여졌다.

주님이 나같은 죄인하나를 건지시기 위하여 어떻게 고난을 당하시고 어떻게 핍박을 받고 어떤 환경가운데서 말씀을 전하셨는지 말씀을 전하자 교인들이 여기저기서 통곡을 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해따라  어려운일이 많아 힘이 여간 들지 않았다.

마지막날에는 물탱크의 물이 다떨어져서 샤워는 커녕 변기의 물도 내릴수가 없었다. 밖에서 전도를 하면서 핍박은 더 거세게 받았다. 몸이 땀으로 젖은가운데 돌아왔으나 씻을 물도 없어 그냥 잠을 청했다. 어느집사님이 쉰내가 나는 몸으로 잠을 청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갑자기 생가이 나기를 주님도 마리둘곳이 없이 사역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땀도 씻지 못하고 이렇게 냄새나는 몸으로 잠자리에 들으신적이 얼마나 많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의 간증에 많은 사람들이 통곡을 하고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한 죄를 회개했다.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 찬송을 부르면서 통곡을 했다.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 근심이나 걱정을 사양할수 있을까 나를 항상 버리고 주를 따라 가겠네

빌라도의 들에선 주를 생각할 때에 수치심과 아픈 것 못견딜수 있을 까 길이 참고 묵묵히 주를 따라 가겠네

갈보리산 올라간 주를 생각할 때에 나의 받는 괴롬을 비교할수 없으리 십자가를 짐으로 주를 따라 가겠네

무덤에서 부활한 주를 생각할 때에환난이나 죽음도 두려울 것 없으리 승전가를 부르며 주를 따라가겠네 

 

이와같이 우리는 너무나도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안일하고 게으른 신앙생활에 길이 들어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세대를 분별해야 한다.

천기는 분별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시간대로 일기를 보면서 살지만 자기의 영적인 상황도 모르고 교인들의 영적인 상황파악도 안되고세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예수전도협회의 여름행사는 여러해전에 이땅에서 사라질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예수전도협회도 존재조차할수 없는 상황이 오늘의영적인 상황이다.

아직도 존재하고 아직도 이일을 하는 것은 주님의 사자가 붙들고 가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미리 말씀하신바와 같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나니 천구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 10-12)

 

복음을 전하는 것과 복음을 전하려면 교회가 회개하고 거룩함을 회복하여야한다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거부하고 대적하여 배척하는 일들이 오래전부터 일어났다. 전도를 조직적으로 방해 하고 회개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해외에서도 일어났다. 예수전도협회를 사이비다라고 하는 교단의 사과도 받아냈다. 그러나 그들은 교묘하게 뒤로 다니면서 협회가 이단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들의 아비는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틀림이 없게 만드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정황이었다. 합동은 여러해를 욯란을 떨고 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흠을 찾을 수 없으니까 이유진장로가 감리교라며 "신학이 다름으로 참여금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유빈장로는 감리교 신학을 하지도 않았고 감리교 신학 졸업식에도 가본적이 없으며 감리교 신학을 모른다.  통합이나 고신이나 합신측은  막연하게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교단의 목사들을 참여금지를 시켰다. 인터넷에서는 이를 빌미로 온갖 추정과 개인적인 말들이 난무하면서 이유빈장로는 이단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말함으로 누가 말했듯이 인터넷은 "거짓을 위한 공간"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이를 통해 마귀는 연약한자들과 진리를 모르는 자들을 미혹하게 하여 복음을 멀리하고 믿음으로 사는 영적인 생활을 멀리하게 하는 악행을 계속하고 있다.

 

여러해전부터 전도여행장소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한십년되었을까? 고신대를 빌렸을 때에 그 교단안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어떤이들은 "그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와 "그사람은 목사를 깐다"라는 말이 반반을 이룬가운데 큰 홍역앓이를 하면서 전도여행을 끝냈을 때에 소동을 일으킨것에 대해 당시 총장이 정중하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이후로는 교단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전도여행장소를 빌려줄수가 없었다. 한참전에는 청주의 통합측 산하 미션스쿨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다. "이학교가 주님의 것입니까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교장과 이사장은 웃기만하면서 곤란해 했다. 더오래전에 전도여행을 한참 시작할 때인 1987년 212명의 전도하는 교인과 함께 부산에 갔을 때에 교단지방회안의 알력으로 길거리로 쫓겨나게 된 것을 담임목사님이 핍박을 무릎쓰고 받아 준적도 있었다.

아무튼 예수전도협회는 미운오리새끼가 되어 큰교단들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장로의 메시지를 부담스러워하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참석하는 인원들도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이것이 개인적인 일이라면 벌써 포기를 하고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일은 주님의 일이요 주님이 시키시고 명하신 일이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찬안갈릴리 교회는 목사님이 개척할 때부터 성장위주의 목회로 같은 도시의 목회자들에게 비방을 받으면서 교회를 크게 키워갔다. 그러던중 목사님이 공황장애라는 무서운병으로 목회를 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실의에 빠져서 목회의 일선에서 물러나 요양을 하면서 그동안 전심전력으로 해온 교회성장이 하나님앞에서 의미없는 일임과 한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그렇게도 소증한 일이라는 깨달음을 주님이 주신 가운데 한번 그교회에서 집회를 한적이 있는데 그목사님의 마음에 주님이 감동을 주셔서 이일을 돕기로 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여러해전부터 교회행사와 겹치고 불편함이 말로 다할수 없는데도 기쁨으로 교회를 빌려주고 언제든지 쓰라고  은혜를 베풀고 있다.

 

며칠전 청소년집회를 하기 위햐 교회를 향해 가는 길에서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얘 네가 삼십년전에 기도하면서 이일은 내일이 아니라 아버지 일입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이 생각이 나니?"

"........."

"그래서 이일은 내가 붙잡고 가는거야."

"........."

"누가 무어라 해도 강하고 담대해야한다."

".........."

"내가 이일을 시작했으니 반드시 필하고 끝낼것이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 알고 계시나요?

이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일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픈 일이요 엄청난 손실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일어나서 주를 따라갑시다.

 

평생 언제 주님을 제대로 따라본적이 있습니까?

이번여름부터는 진실함으로 주님을 따르는 일이 각사람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