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케하는 자들의 티샤바브(Tishah-b'Ab)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7,8)

 

916일에 아는 전도사로부터 휴대전화로 문자(text)가 왔다. 한 사이트를 링크하는 것이었는데, 제목과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티샤바브 티샤바브”, 아브라함이 가족을 이끌고 동방의 땅인 한국의 롯을 건지기 위해서 916일 한국으로 오는 것이 티샤바브라는 말이다. 오래전에 훈련을 받은 그 전도사가 나에게 이와 같은 허튼 문자를 보냈다면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자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고 성령께서 마음에 강력한 부담을 주셔서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참으로 황당한 것은 미혹하게 하는 영은 일반인들이 접하지 않은 용어를 이용함으로 혹하게 만들고 진리를 떠나 미혹함에 빠지게 한다. 그들은 티샤바브가 무언인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롯과 소돔을 한국과 연관을 지으려고 함으로 이 땅이 소돔과 같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임할 것을 두렵게 함으로 자기들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와 같은 것들을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다. 이단들이나 잘못된 학자들이 미혹하게 하는 영에 충동되는 것은 막연하게 성경에 있는 단어들 하나를 꼬집어서 상징적으로 풀고 연결하는 것이다. 이제는 성경에 없는 생소한 단어와 용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미혹에 빠지는 자들은 근신하지 않는 자들이요, 깨어 있지 아니한 자들이다. 그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먹잇감을 찾는 마귀가 삼키려는 대상일 뿐이다. 그들이 미혹에 쉽사리 노출이 되는 것은 염려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은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베드로 사도는 권면한다. 그것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는 마귀에게 먹히지 않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예나 오늘이나 많은 사람들이 미혹하게 하는 영에 빠지는 것은 내일 일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를 염려한다. 그것만 염려하면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그들은 주의 재림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염려한다. 그들은 대 환난을 염려한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은 자기들의 영혼도 다른 이의 영혼도 아니고 자기들의 육체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웬 뜬금없이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은신처를 준비한다고 야단법석인 경우도 있다.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의 어떤 무리들은 환난을 통과하기 위하여 아틀란타로 단체 이주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캐톨릭의 악한 짐승의 영이 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코 리베리에게 역사하여 조작해낸 이론을 발전시킨 영국의 프리머스 형제회의 다비 목사가 전 천년주의 사상으로 20세기 후반에 미국 전역을 물들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미국의 세계선교의 붐을 따라서 전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오늘날 수많은 미혹하게 하는 영이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와 같은 것들을 금하셨다. 먼저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6:33,34)

 

그와 같은 자들은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내일 일을 염려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또 주님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대하여 따지거나 계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날의 권한은 아버지께만 있기 때문에 아들도 모른다고 하셨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6-8)

 

그들은 가치 없는 호기심으로 아버지의 권한을 침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성령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는 권능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복음 전도를 하지 않는 예배당의 안방마님과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주의 제자들과 같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땅의 개념으로 보는 자들이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에게 대답하신 것은 이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이르는 복음전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그때 당시에 주님의 관심도 예루살렘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회복이었다면 오늘날 우리 중에 누구하나 구원받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이스라엘 회복에 관한 땅의 생각을 영적인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 그 결정체가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한 것이다. 성령은 상징적인 것도 아니고 무슨 신비한 종교적인 것도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인격으로 믿는 자들에게 오셔서 그 육체를 성전삼고 그의 안에 거하시면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6)

 

그래서 사도요한은 어느 사람도 진리를 가르칠 수 없고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스승이 되셔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게도 성령이 역사해야 하고 듣는 자에게도 성령이 역사해야 성령이 스승이 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사람의 가르침일 뿐이다. 그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진리를 오직 주께 속한 것이요, 진리의 영은 오직 성령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냉면 한 그릇을 먹으러 가면서 아내가 운전하는 차의 뒷자리에서 책을 하나 읽었다. 그것은 스코틀란드의 로버트 앤더슨 경이 쓴, “오시는 왕”(The Coming Prince)이라는 책이었는데 그는 아무 근거도 없이 다니엘서 719절 이하에 나오는 열 뿔 달린 짐승9장의 칠십 이레의 예언에서 장차 한 왕과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나오는 뿔이 열 달린 짐승을 연결하는 것을 보고 당혹해 한 적이 있었다. 다니엘서 7장의 짐승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같은 것이지만, 그것을 다니엘서 9장의 칠십 이레로 연결하는 것은 아무런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사사로운 추정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은 억지 해석으로 인하여 전천년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주의나 역사기적인 전천년주의나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마태복음을 이천년 이상 뒤로 밀고 가서 대환란이라는 이론을 조작해 낸 것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4:21)

 

만일 전천년주의자들의 이론대로 대환난후에 주의 재림이 있고 그 후에 주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천년왕국이 지상에 임한다면 주님의 말씀은 천년왕국에서도 환난이 있다는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천년왕국이 아니다.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과 동일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은 짧은 지면으로 인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우선 오늘에 제기된 잘못된 것을 지적함으로 베드로가 말하는 굳세지 못한 어떤 사람들의 혼란을 면해주고 속히 이글을 필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티샤바브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다니엘의 칠십 이레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인 원수를 갚으신 것이다. 그것은 발람의 예언에도 나오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즐거워함으로 노래를 했다 그것이 신명기 32장의 모세의 노래이다.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권면의 말씀을 한다.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31:29)

 

이사야도 예언을 하고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을 한 것이 예루살렘의 멸망이다. 그리고 복음서에 보면 주님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일관되게 거듭해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당시 유대인들을 독사의 새끼이라고 저주하셨다. 세례 요한도 그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이라고 증거 하였다. 성령은 성령을 주시는 것을 말하고 불 세례는 심판을 말한다. 그것은 앞뒤 문맥만 살펴도 쭉정이를 불에 태우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불심판을 오해하고 있다.

 

주님이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언하신대로 예루살렘은 AD70년에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함락이 되고, 성전이 불에 타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워 진다. 그리고 다니엘은 전쟁은 시작일 뿐이고 황폐케 되는 일, 곧 하나님이 버리시는 일이 작정되었으므로 그때까지 계속 전쟁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그 말씀대로 AD70년의 제 1차 유대인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세계의 역사학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역사상 그렇게 잔인한 환난은 이전에도 없고 그 후로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인정을한다. 그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일백십만 명이 죽임을 당한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부르짖고 요청한대로 로마제국이 그들을 살상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자들이 종으로 팔려가서 애굽의 노예시장에 내어 놓지만 사는 자들이 없을 것이라고 모세가 신명기 28장에서 예언한대로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칠천 명은 포로로 잡혀가서 티투스의 로마 개선식으로 끌려갔다. 그로부터 계속 전쟁이 있은 후에 AD 132년에 제 2차 유대인의 전쟁(AD132-136)이 시몬 바코바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전쟁 중인 135년에는 로마군대의 사령관인 투루누스 루푸스(Turnus Rufus) 가 예루살렘 성전 터를 쟁기로 다 갈아엎어 버린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예루살렘은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그 이름을 바꾼다. 그리고 유다지방은 가나안이 아니라 시리아 팔레스티나(Syria Palaestina)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에 이른다.

이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58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50개의 성읍과 985개 마을이 갈아엎음을 당해 평지가 되고, 할례 받은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족령이 내려지고 들어오면 사형에 처하여졌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성안에 들어와서 통곡을 하는 의식을 치루는 일은 허용이 되었는데 그것이 이른바 티샤바브”(Tishah-b'Ab)이다. 그것은 패배와 멸망과 슬픔을 대변하는 말이다.

 

티샤바브의 어원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열왕기상 시대에 엘리야에게까지 간다. 엘리야는 디셉사람 엘리야로 불리워졌는데 여기서 디셉토솨브인데 사로잡힌 자또는 포로된 자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스라엘에 디셉이라는 지명은 없다. 그것은 엘리야를 조롱하는 말이다. 곧 “주거부정의 엘리야”가 디셉사람 엘리야인 것이다. 이 말에서 티샤바브가 유래한 것이다. 레위기에는 이 단어를 나그네”, “지나가는 사람”,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거주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토솨브 구르)” (25:6)

 

그러므로 티샤바브는 예루살렘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때 이후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가다가 통곡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거룩한 성을 버리신 것을 아파하는 육적인 아픔이요, 육신적인 비통을 표현하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생소한 용어로 이용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마귀의 수작이 티샤바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롯을 동원하고 아브라함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를 소돔으로 여겨서, 곧 멸망이 임할 것으로 위협하고 협박으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8:15)

 

거기에 경주의 지진과 김 정은의 핵실험 등을 통한 백성들의 민심의 불안을 이용해서 공포심을 극대화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들의 말을 듣게 하는 사이비 집단의 전형적인 행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7,8)

 



(*.220.12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