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백신 깨달아 알지니라

 

종말론은 바이러스와 같이 위험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호기심이 진리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한 것이며 마귀적인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아직 이 땅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도 호기심으로 말미암은 종말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아니하셨다.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참된 믿음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막연히 기다리고 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냥 기다리면서 때를 따져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준비하는 교회는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교회는 준비하지 않는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은 주님이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주의 일을 하는 것이다.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24: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사도들도 호기심과 잘못된 믿음으로 주를 기다리는 것을 경계했다.

 

(살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살후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호기심은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이다. 그와 같은 것들은 주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곧 예수를 믿지 않는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장래를 두려워 한다. 그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말에 대하여 거짓말을 지어내기도하고 그 종말론의 거짓말에 미혹이 되어 넘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려워하는 자들이나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요 영생이 없는 자들이다.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것은 주의 사랑안에 거하지 않는 것을 명백히 증거하는 것이다. 주의 사랑안에 거하는 사람은 마지막날에 대한 담대함이 있다. 그것이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된 특징이다.

 

(요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와같은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어기고 교부시대때부터 종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중세를 지나면서 카톨릭의 종말론이 등장이 되었는데 그것은 교회의 그리스도의 통치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를 지도하는 지도력을 높이기 위하여 오용이 되었으며 또 교인들에게 헌금을 하고 교회의 일에 충성을 하는 것이 믿음인양 가르침으로 거짓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후로 교회는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고 종교개혁을 이루면서 본격적인 종말론의 시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나간 오백년동안 무명한자들은 빼놓고라도 오백명에 가까운 신학자들이 저마다의 추정에 의한 이론을 내어 놓음으로 종말론의 대 혼란가운데 빠지게 되었다. 그와같은 것들은 주님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거스리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결과 곧 열매가 않좋게 나타난 것이다. 거의 모든 이단들이 교회안에서 일어난 종말론을 가지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1843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가르쳤던 윌리엄밀러는 침례교 평신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형천막을 지어 놓고 그안에서 재림복을 입고 재림하시는 예수를 기다렸으나 실패로 돌아 갔다. 1843년이 틀리자 그 이듬해인 1844년에도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엘런화이트라는 사람에 의하여 교회를 나가서 제칠일 안식일 재림교를 세운 것이 1863년의 일이다.

1830년 조셉스미스에 의하여 창설된 몰몬교도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가 미국땅에 새 예루살렘을 세워서 그리스도가 친히 지상에서 다스릴 것과 땅이 새로워지고 파라다이스가 될 것을 믿는다. 그들도 정통교회안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대환란이 올 것과 피난처를 구하는 것을 가르친다.

1870년 찰스 테이즈 러셀에 의하여 세워진 대학생성경공부모임에서 여러 가지 잘 못된 교리와 종말론을 가지고 교회에서 나뉘어 간 무리이다. 그후에도 재림예수로 자기를 주장하는 이들이 많이 나왔으며 한국의 신천지도 요한계시록을 임의로 풀어서 많은 교인들이 미혹되고 그로 인하여 가정도 파괴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물의를 일으켜 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거의 모든 이단들이 교회안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같은 것을 말하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역사적인 전천년설이나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이 대동소이한 것을 말하고 있으며 확실한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이단들이 오용하고 악용하기가 쉬운 것이다. 거짓선지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임하지 않은 종말은 마음대로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수 없는 좋은 재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 에스겔서는 임의로 해석을 해도 누구하나 아니라고 할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구약의 예언서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정통교회는 정통교회대로 성경을 알지 못하고 신학자들은 신학자대로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에 그와같은 거짓말을 반박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데다가 자신들도 추정으로 함부로 해석을 해 놓은 전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종말론의 대혼란이 거듭 일어나도 교회는 그것을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을 규정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들의 부도덕한 것들을 가지고 그들을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지만 이단들이 하는 악한 짓이 사실상 기존의 교회안에도 그대로 있는 것들임을 살펴보면 경악을 금할수 없는 것이다.


신천지가 헌금을 강요하고 그것을 믿음인양 치부를하는 것은 오랜세월동안 정통교회안에서 우리나라의 부흥사들이 해왔던 일과 일치한다. 건축헌금을 하기 위해서 헌금을 작정시키고 그것을 위하여 적금을 들도록 하고 헌금을 많이 하면 믿음이 좋은 것처럼 말해서 교인들을 등치고 혹세무민하며 고혈을 빨아 먹는 일들은 아마도 그들이 기성교회에서 배워간 것이라고 말을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들이 거짓말로 전도를 하는 것은 비교도 할수 없이 악한 일이지만 교회도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전도가 아닌 교인들을 얻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전도는 속임수이다. 증인이 되지 못하고 교인을 얻고자 하는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도에 대하여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책망을 하셨다.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를테면 복음은 전하지 않고 휴지나 차를 나누어 주면서 "예수 믿으세요"하는 것도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기만하는 것이며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해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종말론에 관한 한 기성교회의 목사중에 종말론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이단들이나 그들이 주장하는 종말론도 대동소이하지만 그 종말론을 가지고 교인들에게나 목회자들에게 두려운 마음을 심이 주려하는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무서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아니 믿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사람이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물론 이와같이 성도들안에 있는 두려움을 이용하여 거짓말하는 자들의 거짓말이 먹히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이 온전치 못한 것을 이용하는 마귀의 술수가 작용하는 것이다. 성도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사모하는 사람이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종말론을 아는 지식이 이모든 거짓말들을 대적하고 마귀의 모든 궤계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종말론의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시점을 오해하는데서부터 시작이 된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또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를 알지 못하고 거짓선지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와 적그리스도의 개념이 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틈새를 마귀가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의 상관관계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모든 무지로부터 종말론의 궤계가 역사하는 것이다.

어느 한 원로목사님이 깨달아 알지니라책을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선물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은 종말론에 무척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분에게 책을 드리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목사님 그리스도인의 종말은 예수를 믿기 바로 전날이 종말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또 다른 종말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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