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구원

 

 

본문 : 고전 1:17,18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들어가는 말

 

구원에는 세 가지 구원이 있다. 과거에 받은 구원과 지금 얻는 구원 그리고 앞으로 받을 구원이다. 받은 구원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을 때에 영생을 얻은 것을 말한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성경은 얻은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구원을 말할 때에 성경은 반드시 과거완료시제인 부정과거로 말한다. 반면에 얻는 구원은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현재분사 곧 현재진행형으로 날마다 항상 받고 사는 구원을 말한다. 말하자면 현재진행형구원이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안에 거하시면서 일상생활에서 날마다 나를 도와 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시고 위기에서 건져 주시며 죄를 지었을 때에 용서하시고(하타아) 잘못된 행위를 고쳐 주시고(폐솨)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심으로(아온) 모든 것을 고침받고 이기는 승리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받을 구원은 미래에 일어나는 것으로 우리가 부활시에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얻은 구원조차도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요 성령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혹 장로 목사라 할지라도 교회를 출석하는 것 외에는 세상사람들과 구분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교회안에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지만 생활속에서 날마다 건져 주시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영육간에 사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장차 받을 구원에 대한 확신까지 희미해져서 종말론이나 주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관하여 마귀가 보낸 사람들의 큰 거짓말을 듣고 오히려 두려워 하는 생활을 살고 있으며 그래서 에수를 믿으면서도 사는 것도 힘들고 죽는 것도 무서운 생활을 사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날이요 기쁨의 날이다. 그 날은 두려운 날이 아니다. 그날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께 버려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요 장차 올 심판아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이 주님이 다시 오심을 두려워 하는 것은 마귀와 사람들에게 속아서 현재진행형의 구원으로 살지 못하는 사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지금 구원을 현재진행형으로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늘 세가지 구원 가운데서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얻는 구원을 자세히 살펴 봄으로 도움을 받고자 한다.

 

 

2. 고린도교회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3차전도여행때에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면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에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는데 바울이 떠난후 얼마 되지 않아서 분열이 되고 서로 다투는 교회가 되었다. 바울은 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을 하기를 고린도교회는 바울과 그의 십자가의 복음보다는 말을 잘하는 곧 설교를 잘하는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서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나뉘어 다투다가 이를 지겨워하던 어떤이들은 자기들은 그리스도파라고 주장을 하고 그래서 교회가 사분오열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은 뒤로 한 채 누구에게 셰례를 받았느냐를 먼저 따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헬라인들인 마게도냐 사람들답게 지혜있는 자들을 구하고 선비를 구하고 변사를 구하는 어리석음에 빠진 것이다. 교회가 그렇게 되니 자연히 교회안에 죄가 들어 왔는데 이방인들에게도 없는 죄를 짓고 그것을 용인하는 교회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고린도교회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상실한 교회가 된 것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5장에서 죽은 아버지의 계모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이방인중에도 없는 죄를 짓는 일이 교회안에 일어났으나 그 사람을 회개를 시키기도 힘든 교회가 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형제들을 세상 법정에 송사하고 7장에서는 음행의 문제를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가정생활에서 여러 가지 규모 없는 모습을 보이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8장에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 형제들을 실족시키고 9장에서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어 복음을 변질시키며 10장에서는 우상의 제물에 혼란을 정리하지 못하고 11장에서 교회생활의 질서가 없고 12장을 보면 피차에 직임을 가지고 다투는 자들이 되고 13장을 보면 사랑이 없는 교회가 되고 14장을 보면 은사에 질서가 없는 교회가 되고 15장을 보면 결국 그들은 장차 얻을 구원인 부활을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오늘날 현대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고린도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 바울이 전한 복음

 

그런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세례보다는 복음을 우선시하고 말의 지혜 곧 말을 잘하는 설교의 재주가 아니라 십자가의 도를 말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사람에게 임하여 개인과 교회의 모든 문제로부터 건짐을 받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이 믿음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 세례가 아닌 복음

 

바울은 고린도에 갔던 것은 그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간 것이 아님을 엄하게 환기시킨다. 그는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려고 간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복음이 없이는 세례도 없다. 오늘날도 위험한 일중에 하나는 복음이 없이 세례를 받는 일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에서 교인을 만들기 위해서 무차별적으로 세례를 준데서 기인한다. 복음이 없는 세례는 가짜이다. 그것으로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2) 말의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없는 세례의 위험성 다음에 오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으로 복음을 밀어 내는 것이다. 그것은 설교나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것이 마치 복음인 것처럼 위장하는 속임수이다. 설교를 잘하는 것은 설교일 뿐이지 복음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을 잘하려고 사람들은 공부를 더하여 선비가 되고자하고 설교를 잘하는 말쟁이가 되는 변사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요 자기 자신도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지 못하여 겉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지의 비참함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에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고 설명하여 믿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듣고 믿을 때에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3. 현재진행형 구원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구원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죽음후에와 미래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현재구원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역사하는 현재진행형 구원이다. 현재진행형 구원으로 사는 사람은 과거 구원도 있고 미래의 구원인 부활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구원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현재구원이 있을 리가 없다. 또 현재구원이 없는 사람은 미래에 받을 구원인 부활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가장 비참한 현실은 과거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도 현재진행형의 구원도 없고 미래구원까지도 의심하는 생활을 살고 있는 것이다.

 

1) 멸망하는 자들

 

멸망하는은 헬라어로 아폴뤼미인데 현재분사중간태 복수동사이다. 쉽게 번역을 하면 버림을 받고 있는 자들이며 잃어버려진 상태에 빠져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분사 곧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현재진행형으로 버림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효력이 없어 미련하게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버려진 상태가 현재진행형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의 도가 아무 효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나를 믿어라또는 이 주먹을 믿어라고 어리석은 말을 하고 돈을 믿다가 실망당하고 사람을 믿다가 속임을 당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2) 구원을 얻는 우리들

 

구원을 얻는 우리소조 혜민으로 구원이라는 동사인 소조는 현재분사수동태동사이다. 곧 계속구원을 받는 현재진행형으로 구원을 받는 우리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4. 구약의 현재진행형구원

 

구원이 현재진행형인 것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도 현재진행형인 구원을 받으면서 살았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넌 후에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했다.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시로다하야인데 시제가 미완료시제로 현재시제를 말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118: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18: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여기서 되셨도다되셨으니하야로 미완료동사이다. 다윗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건지시는파라트인데 강의능동태능동분사이다. 나를 강력한 의지로 계속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다윗은 날마다 자기를 건져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31: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31: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31: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1:4)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31: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31: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31:8)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다윗이 불레셋의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척하다가 쫓겨나서 생명을 부지했을 때에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주께서 둘러 진치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이라고 찬송을 했다.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하나님이 일마다 때마다 건져 주시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벌써 사울의 손에 죽었을 것이고 불레셋의 칼에 죽었을 것이다. 다윗은 날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항상 노래했다.

 

(35:10)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54:7)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59:1)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59:2) 사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라고 찬송한 것이다. 이것이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5. 신약의 현재진행형 구원

 

신약의 현재진행형의 구원은 보혜사 성령이 믿는 자 안에 들어오시면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우리안으로 들어 온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보혜사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우리는 그의 건지심을 받아서 크고 작은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고 병고침을 받으며 모든 시험을 이기고 환난을 견디며 믿음으로 승리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을 주시면서 우리들에게 주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모든 것으로부터 날마다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능력이 됨이라에서 됨이라는 현재시제이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믿는은 현재분사로 말하자면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일회적이 구원이나 과거 또는 미래의 구원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항상 날마다 믿는 자에게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주시는 것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말을 잘하는 교만한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알아 보겠다고 했다.

 

(고전 4: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을 잘하고 설교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현재진행형으로 구원을 받아서 건짐받고 고침을 받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인지를 알아보겠다는 말이다. 곧 말을 잘하는 사람이 현재진행형의 구원의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의 구원은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믿는 이에게 보내신 보혜사 성령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것은 세상 끝날까지 책임지시고 건져 주시고 날마다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우리가 항상 영원히 그리고 끝날까지 성령의 건져주심이 없이는 살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벧후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건지시고는 흐뤼오마이로 현재시제이다. 지금 건져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불의한자는 형벌아래두어 지키신다는 말씀에서 형벌아래 두어콜라조로 현재분사수동태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임하는 형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키시며는 테레오로 현재중간태이다. 그 형벌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신다는 말씀이다.

 

 

6.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성도는 날마다 그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날마다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믿는 성도는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함이다.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성령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된 성도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보전하시는 능력이다. 보전하시는 것은 고치고 치료한다는 것이다.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시험에 들고 죄를 지을 때마다 용서해주시고 그와같은 죄를 게속하는 잘못된 인격과 행실을 치료해주시고 고쳐 주셔야 하나님과 하나가되도록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만 주님하고 틀어지고 안 맞아도 교정해주시는 권능이다. 조금만 죄로 더러워져도 곧 보혈의 능력으로 사해 주시고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시고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영혼이 더러워질 때마다 또한 때로는 내가 더러운 말을 함으로 내 영혼을 더럽힐 때도 그것을 정하게 씻어서 치료하시고 고쳐 주시는 성령의 보존하시는 권능이 날마다 우리를 건져 주시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이다.

생활속에서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나 환난이 닥쳤을 때에 길을 열어 형통하게 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시며 가난과 기근과 전쟁과 전염병을 이기게 하시는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시며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떨어져 두려움에 빠졌을 때에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고 고쳐서 바로 잡아 주시는 것이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7. 맺는 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힘들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현재진행형인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다. 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변화되지도 않고 영적으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재진행형인 구원을 받는 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망에서 건짐을 받아 영생을 얻은 구원받았을 때에 믿음은 있지만 지금 내주하시는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믿음이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몰라라 하시는 이가 절대로 아니시다. 성령을 받지 못하고 약속만을 받았던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도 현재진행형인 믿음으로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으면서 살았다. 그것이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성경의 모든 기록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아서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아서 살 때에 옥에서도 나오게 하시고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매를 맞아도 핍박을 받아도 때로는 죽임을 당해도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이 된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현재진행형의 구원이 없는 교회는 고린도교회와 같이 비참하고 무질서하며 사랑이 없는 교회가 된다. 오늘날 그보다 백배나 악한 현실이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가 그러하다면 현재진행형의 구원이 없으면 개인도 가정도 힘들고 지친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는 생활을 언제 어디서 무슨 죄 때문에 회개하지 않아서 잃어버렸는지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 것은 십자가의 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버리고 말만 잘하는 사람의 설교를 듣기를 구하고 즐기기만 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뒤로하고 세례를 주는 목사를 따라 가는 사람중심의 종교생활을 청산하고 생활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의지함으로 오늘도 크고 작은 모든 인생의 문제에서 건져 주시는 현재진행형의 구원을 받는 믿음으로 회복하는 은혜를 받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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