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월요일 점심때가 가까왔을 때에 협회에 손님이 왔다고 했습니다.

대전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당진에서 각 한분씩 왔다는 말이었습니다.

월요성경학교가 안한다는 것을 알고도 피차에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내얼굴을 보여 달라는 말은 아니었지만 멀리서 온분들인데

식사라도 대접을 해야겠다고 협회에 가서 포장음식을 사다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잠깐 교제를 나누는데 즉석에서 성령이 감동하심이 왔습니다.

이분들을 밥만 먹여서 보내겠느냐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월요성경을 하자고 하니까 다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이것이 형제사랑인가봅니다.   


그래서 초미니로 월요성경을 했습니다.

영혼의 안식과 마음의 안식 몸의 안식에 관하여 깨달음을 주신대로 전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몸의 안식을 위해 먹을것과 입을 것을 먼저 구하고

그래서 돈을 먼저 구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음식이나 음료나 돈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리에 들어 갑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빼앗아 갑니다.

몸은 평안하고 안식을 누려도 마음이 편치 못하면 몸도 자유롭지 못하고 안식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안식이 없으면 마음도 고생하고 몸도 고생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몰라서 안식과 평안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하지만 오히려 요란하고 힘든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안식은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은 누릴수가 없습니다.


몸〈 마음 〈 영혼 ↔ 하나님


영혼이 불안하면 마음도 몸도 불안하기 때문에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이 그칠날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해야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영혼이 쉼을 얻어야 마음도 평안하고 몸도 쉼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곧 영혼의 안식을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들을 더하시고 이모든 것들을 살수 있는 돈도 재물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쉼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평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죄인이 하나님과 평화하려면 그리스도가 필요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신학에는 없었던 계시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신학에서는 계시를 일반계시와 특수계시로 나눕니다.

그것을 어떤이들은 일반은총과 특수 은총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것으로 믿는 자와 안믿는자를 구별하기 위하여 쓰기도 하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아니 다니는 사람을 구별하는데에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념상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요 단어 선택에도 문제가 있는 말입니다.

물론 개념이 틀리니 용어도 틀려지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이 저에게 가르쳐 주신 계시는 이러합니다.

계시는 자연계시(nature's revelation)와 개인적인 계시(personal revelation)가 있습니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중에도 지각이 있는 자들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자들은 피조물을 하나님인줄 알고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해를 섬기고 달을 섬기고 별을 섬깁니다.

나무나 동물을 하나님으로 숭배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계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한사람씩 개인적으로 찾아 오셔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담도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찾아 오시고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이나 야곱도 그리고 요셉과 모세도 구약의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일대일로 찾아 오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개인적인 계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1) 들려 주시는 계시


그런데 구약의 개인적인 계시는 들려 주시는 계시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려 주심으로 믿어 의롭다함을 받게 합니다.

모세는 그 들려 주시는 언약을 돌판에 기록하여 받았습니다.


2) 보여주시는 계시


그러나 그리스도의 계시는 보여 주시는 계시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보는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사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요한도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주님도 자기를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래서 아들을 보고 믿는자마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3) 내주하시는 계시


그리고 성령의 계시는 내주하시는 계시입니다.

성령은 믿는이안에 들어와 영원히 계시며 계시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는 내주하시는 계시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래서 주님이 가시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장래일을 알게 하십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그래서 요한은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너희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고 했습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한계시록도 성령이 장래일을 알게하시는 역사로 요한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이 내주하시는 계시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계시는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교부시대부터 있어온 무지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계시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가장 싫어하는 선비들이요 변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주하시는 계시인 성령을 알지 못하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내주하시는 계시가 없는 사람은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는 예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장래일을 알게 하시는  성령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성령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초기 교부들중에 몇몇이 철학적인 머리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였기 때문에 지나간 1900년가까운 시간동안 종말론의 오해가 교회를 어지럽히고 세상을 혼란시켰습니다. 그들의 종말론은 주님이 다시오시는 재림을 두려워하게 하는 율법주의 적인 해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다시 오심이 가까이 오는 것을 환영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내주하시는 계시를 무시하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반대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무서운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심판이 임하는 것도 그것과 무관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늘 이와같은 은혜를 피차에 나누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순수한 형제 자매의 사랑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월요성경을 당장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월요성경을 속히 시작할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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