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용 교회

 

어느 교회앞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문득 그교회에서 내 붙인 프랑카드가 눈에 들어 왔다. 전교인 수련회라는 프랑카드안에 표어로 주여 우리를 사용하소서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순간 내마음속에 무엇에 저들을 사용해달라는 말인가라는 의문의 마음이 올라왔다.

전도도 안하는 교회 복음도 없는 교회 시간마다 예배만 드리고 찬송만 하는 교회가 무엇을 주님께 사용해달라는 말인지 이해가 아니 되었다. 그러면서 순간 마음속에 저들은 디스플레이용 목사요 교인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왔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교회는 그냥 교회라는 것을 디스플레이할 뿐이지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교회이다. 그것이 디스플레이용 교회이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영혼사랑을 잃어버린지가 오래 되었으며 전도해서 영혼을 건지는 사람을 낚는 어부는 전무하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도 없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없다. 그냥 그들은 교회를 하는 사람들이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예배시간에는 예배용 디스플레이 목사요 장로요 집사요 교인들이다. 그들은 교회에서만 목사로 보이고 집에서는 목사가 아닌 삶을 살고 있으며 교회에서만 장로노릇을 하지 집에서나 직장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 아니요 장로도 아닌 사람이 100%이다. 그들은 교회안에서만 집사이지 세상에서는 세상사람들이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백화점에서나 길에서 그들이 피차 목사를 부르고 장로님이라 부르고 집사님 권사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이 그이름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존재라는 사실도 망각하고 후안무치하게 세상에서 교직을 부르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

사실 먼 옛날에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직장안의 교인들은 사람들에게 아 저런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구나라는 인식외에는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전부이었다. 아 저런 사람들이 집사고 장로구나 그래서 욕만 안먹으면 다행인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며 나이롱 신자라고 놀림을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디스플레이용 신자이지만 나주 나쁜 디스플레이신자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하는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건짐을 받은 증거가 생활속에 나타나고 세상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에 말이나 행실이나 성품속에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교회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church goer)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주를 따르는 사람(follower of Jesus Christ)들이 모이는 모임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은 디스플레이용 신자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다. 교회안에도 열매가 없는 어두움에 일에 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한 빛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다.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5: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열매는 없고 디스플레이만 하는 이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앞에서 부끄러운 사람들이며 그와같은 교회를 다니는 것도 부끄러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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