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부는 거룩함의 바람

2차 네팔 목회자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우선 경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진행을 내가 맡기로 하고 간사들의 비행기표를 다 취소를 했다.

여러 가지 우려섞인 의견들도 있었지만  경비를 줄이기 위해 가장 간편하게 팀을 꾸려야만 했던 것이다.
동행했던 목사님들이 더 걱정이 되었는지 모든 것이 모자란 것이 없이 잘 진행이 되었다.

비행기 좌석을 받으면서 가급적 오른쪽으로 좌석을 달라고 했다. 초행길인분들이 많은데 날씨가 좋으면 히말라야 산맥을 보게하게 하기 위한 생각에서였다. 네팔에 가까이 오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히말라야는 짙은 흰구름에 덮여 보이지를 않았다. 미국에서 오신 전도사님이 “장로님 히말라야가 안보입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마치 내가 없는 것을 보여주려고한 사람인것처럼 의심하는 말투로 말을 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어떤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내일이 언제야?”라고 물었는데 “응 내일이 내일이란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다음날 아이가 또 엄마에게 내일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에 같은 대답을 듣고 그다음날도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들은 아이가 “엄마 아마도 우리에게 내일은 없나봐요”라고 했다는 말을 하면서 “장로님 아마도 히말라야는 없나가봐요”라고 말을 했다.
“전도사님 그래도 히말라야는 있습니다.”
“.....”
“흰구름에 가리워 있어도 히말라야는 있어요”
“....”
“세상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안보여도 하나님은 있는것과 같이요”

그리고 내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카트만두에 도착을 하자마자 우리를 기다린것은 두시간동안 줄을 세워 비자를 받게하는 행렬이었다.
지칠대로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공항을 빠져 나오자 마자 세미나 시작시간이 촉박하여 첫시간 담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세미나 장소로 보내어 시작을 하게 했다.

첫시간 간증시간이후에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 이전에 이년전에 네팔의 고아원을 방문한 일을 주님이 생각나게 해주시면서 인구 2천5백만에 우상수가 3억3천만인 이나라가 전체가 하나님아버지를 잃어버린 고아나라라는 사실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였다.
“이네팔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안보이지만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리고 저들을 사랑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여기 올때에 히말라야가 구름에 가리워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있습니다.”
“네팔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은 저들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요 네팔교횝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우고 있는 구름입니다.”
“전도를 못하는 불량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가리우고 있는 구름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 참석자들이 말할수 없는 충격속에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며 우는 일들이 일어났다.
같이 동행한 목사님들도 말씀이 그렇게 나올줄을 모르고 있다가 충격을 받았다.
나도 비행기에서 한말이 말씀이 되어 나올줄은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렇게 주님이 계획하시고 주님이 그의 전권으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네팔목회자 세미나가 시작이 되었다.

간증시간마다 생소한 주님의 역사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다. 전도를 나가서 영혼을 건지고 준비된 영혼을 만나는 역사도 일어났다.
그런데 둘째날 낮까지 무엇인가 방해를 받고 있는듯한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그것은 통역의 문제였다. 이년전에도 그랬지만 통역에 자꾸 설명이 붙고 잘못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회중들에게 아멘을 유도하는 할렐루야를 통역하는 박목사님이 하는 것이었다. 그와같이 인위적인 것을 성령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게 해주셨다.
둘째날 저녁에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전하는 말씀에 붙여서 회중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할렐루야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말씀이 끝난후에 선교사님을 불러서 할렐루야를 인위적으로 선동하는 것이 잘못된 것을 말해주고 통역을 한글자도 빼놓지 말고 직역을 할것을 주문을 했다. 그랬더니 “장로님 어떤때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돌려말할 때도 있습니다.”라고 하길래 “목사님 그때는 안해도 괜찮아요 설교자가 안한말만 하지 마세요”라고 말을 해 주었다. 나중에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 때문에 마음이 언짢아서 힘들었는데 그다음날 새벽기도시간에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바로 잡아 주시기에 눈물로 한참동안을 울면서 회개를 하였다고 한다.

둘재날 저녁에는 열매를 맺는 생활을 말하면서 나는 찬송을 생활로 불렀다고 간증을 하면서 네팔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감성적인 복음성가로 자기들을 속이고 하나님앞에 내놓을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했을 때에 숙연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이는 말씀을 들으면서 시종일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말씀을 들었는데 그것은 말씀앞에 자기의 모습이 너무나 아닌 것이 아파서 그렇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를 간증하면서 열매보다 전도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주님하고 사는 영적인 생활임을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는 두가지 가지가 있는데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맺게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시는 가지가 있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하나님이 이를 제해버리시는 가지가 있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들은 어떤가지에 속하느냐고 도전을 주고 말씀을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 최홍우 목사님 간증시간에 다른 목사님이 오셔서 통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분이 오지를 않았다. 박목사님이 하루종일 열시간이상씩을 통역을 하면서 힘들었는데 간증으로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서 영적인 감각이 예민해지자 그목사님이 안오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자기가 힘들어도 훈련도 안받고 어떤 말씀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통역을 망치면 어떻게하나 겁이 나더라고 했다. 주님이 그렇게 세미한것까지도 간섭하시고 주장하시는 역사이었던 것이다. 최목사님의 간증을 통역하다가 말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메어 우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날 아침부터 할렐루야를 안하고 곧이 곧대로 통역을 하다가 통역자가 은혜를 받고 깨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현지 목회자들이 그시간에 빠짐없이 깨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전간증을 끝내고 호텔에 갔다오는 길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것이 있었다. 길거리에 버스와 승용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 사람들이 개나 소가 다 함께 어우러져 다니면서도 누구하나 불편하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는 일이 없는 길을 볼 때에 주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얘야 저것이 무질서의 평화요 무기력함으로부터 오는 평화란다.” 저들의 평화란 십자가로 죄를 이김으로 성령을 주셔서 우리안에 거하심으로 죄를 이기고 흑암의 권세를 이기는 평화가 아니었다. 오전에 아침식사를 하고 집회장소로 이동할 때에 골목에 가득한 신상과 신전들과 거기서 엎드려 절을 하는 사람들과 피로 제사를 드리는 모습들을 보았다. 저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아래에 있는 자들이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영원히 단번에 드려지신 화목제물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된 자녀들이지만 저들은 아직도 창세기 3장의 진노와 저주아래 두려워 떨며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피로 제사를 드리는 무지한자들이었다.
저녁시간전에 말씀을 전하면서 무기력함으로부터 오는 평화의 모습과 피로서 제사를 드리는 진노아래 있는 죄인들에 관한 말씀을 전하면서 죄를 자백하고 영혼을 씻는 말씀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 죄를 자백할줄을 모르는 것은 길거리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만도 못한사람이라고 말씀을 전했다. 저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에서 화목하게하시는 복음을 몰라도 자기들이 죄인인 것을 알기에 두려움에 매일아침 제사를 드리는데 그아들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진노를 대신 당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짓는 죄를 시인하지 않고 감추는 것은 이방신상에 절하는 자들만도 못한 악하고 교만한 것임을 말했다.
죄를 자백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영혼을 씻지 못하고 자기영혼을 씻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영혼을 사랑할 수가 없고 그래서 전도를 못하는 것과 죄를 숨기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서조차도 형통하지 못한 것 그리고 죄를 숨기기 때문에 기도응답이 없고 기도응답이 없기 때문에 기도를 아예하지 않게 되는 영적인 빈곤의 악순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다.

말씀을 전하고 죄를 자백하는 시간에 한참을 침묵을 하는가운데 몇사람이 간접적인 죄자백을 하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자기의 죄의 사실을 말할 것을 가르쳐주고 한여인이 일어나서 저기가 남편을 미워하고 도적질한죄를 자백했다. 약간의 영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국인선교사 한분이 일어났다. 그분은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이었는데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주님 저는 형님이 죽으면서 저에게 형수님의 생활비를 맡겼는데 그생활비의 일부만을 주고 나머지는 내가 다썼습니다.”
회중에 큰 떨림이 임했다.
“저의 아내는 일생동안 저에게 너무나 헌신적으로 잘해주었으나 나는 평생에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만치도 없이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고 멸시했습니다. 주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악한 죄도 용서 받을수있겠습니까?”
그뒤에 앉아 있는 한국선교사님들이 통곡을 하고 소리내어 부르짖고 울었다. 앞에 앉은 현지인들이 몸을 떨면서 울었다. 어떤 네팔목사님은 손을 부들부들 떠느라 죄를 자백하는 중에 마이크를 떨어뜨릴정도로 회개의 영이 강력하게 임했다. 회중전체가 숨이 멎을정도로 울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저녁식사시간도 거르고 우는 이들이 있었다. 식사를 하고 올라오는데 어떤 자매가 집회장소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통곡을 하고 뛰어나오더니 화장실로 들어가서 방성대곡을 하면서 울었다.      

마지막시간에 말씀을 전하고 천국에서 만나보자 찬송을 부르고 집회를 마치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현지인들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년에도 집회를 한다고 광고를 했다. 저들은 평생에 들어보지도 못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

내년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네팔땅에 다시 임하시기를 기도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네팔에도 거룩한 회개의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기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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