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어느 아기 엄마에게 주님이 은혜를 주셨다.
이사 오기 전에 어렸을 적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20년 동안을 교회생활을 하고도 만나지 못하던 주님을 만났다.
자기를 교회로 인도한 애기엄마도 초신자였는데 그에게 귀찮도록 십자가의 도를 묻곤 했다.
그리고 지난여름에 집중코스를 전체로 참석하기를 원하였지만 여의치 못해서 십여 명의 교인들과 함께 화요일 하루만 참석을 했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과 저녁에 두 시간동안 아브라함의 십자가의 은혜에 어느 누구보다도 은혜를 받았다. 교인들 앞에 통곡을 하며 지난 이십년 동안 어둠속에 살았던 원통함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머니에게 주님을 만난 것을 자랑하고 또한 먼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주님을 만난 사실을 자랑하였다. 그랬더니 누구에게 은혜를 받았느냐고 해서 이유빈장로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자마자 그 목사님이란 분이 “아 그것 이단인데”하면서 난리를 쳤다고 한다.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는 목사대로 같은 말로 훼방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장로가 주일설교를 하기 때문에 잘못된 교회라는 둥하면서 다른 교회로 옮길 것을 종용하였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그 자매는 밤새 인터넷을 뒤지고는 ‘아 그렇구나! 이유빈장로는 이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와서는 자기를 인도한 성도에게 말을 하여 혼란스럽게 하고 온통 교회를 들썩이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는 하도 기가차서는 내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아니 밤새 뒤져보려면 성경을 뒤져보고 진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봐야지 아니 밤새 사람들이 자기생각을 말한 인터넷을 뒤지면 어떻게 하나?”이었다.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 그렇게도 은혜를 받고 말할 수 없는 눈물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받고도 한순간에 사람의 말과 마귀의 훼방에 놀아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전도협회에서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받고도 사람의 말에 미혹되어 일순간에 진리를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혹하게 하는 영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들의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과 예수전도협회를 이용해서 자기의 야망을 이루고자 당을 짓고 배반함으로 자기의 욕심에 넘어간 사람들, 이 진리를 순종하지 못함으로 스스로 미혹되어버린 사람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더 사랑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속히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땅에는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혹하게 하는 영이 있다.

앞서 말한 그 목사가 자기가 이십 년 동안 목회를 하고 자기 앞에 앉아서 설교를 들은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이 스스로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인 것을 증명하는 것인데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거지선지자에 대한 경계를 하시면서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열매임을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이 말씀은 목사라고 다 목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열매가 있어야 주님이 인정하시는 목사라는 말이다. 선교사라고 다 선교사가 아니다. 열매가 있어야 한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장로라고 장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주님 앞에서 주님이 맺게 하신 열매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교회 일을 열심히 해도 열매가 없는 일은 어둠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0, 11).

그런가하면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것은 선한 일에 열심이게 하기 위함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선한일은 열매를 맺는 일이요 어둠의 일은 열매가 없는 교회 일을 말한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한다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있는 선한 일에 열심을 냄으로 열매를 맺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도 열매 없는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십팔 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예수님이 보시고 불러 이르시기를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하심으로 안수하실 때에 여자가 몸이 펴져서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때에 회당장이 말을 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하고 말을 하면서 주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을 향하여 분을 내었다. 주님이 대답을 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그러자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눅 13:17).

지금도 두 가지 사람들이 있다. 자기들이 한 말을 부끄러워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자들이다.
똑같은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고 분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고침 받은 여인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똑같은 사건이 회당장에게는 분을 내는 일이 되었다. 왜냐하면 주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침으로 안식일을 어긴다는 것이었다. 회당장이나 반대하는 이들은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였던 영혼보다도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을 더 중요시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병을 고치는 것을 일로 보았다. 그래서 안식일에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영혼을 사랑 하셨던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데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안식일에는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어찌 보면 극악한 공산당보다도 더 악한 말이 아닌가 말이다.

이렇게 이십 년 동안을 교회를 다니면서도 사단에게 매여 어둠의 생활을 살던 자매를 주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 저들의 조잡한 생각을 가지고 분을 내고 판단하여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는 것이 아니라 많다.

만일 그 사람이 주님의 진실한 종이라면 그가 하는 일이 주님의 일이라면 그래서 교인들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은 그 자매가 주님을 만난 영광스러운 일을 먼저 기뻐했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십 년 동안 사역하면서도 그 자매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것을 그 자매에게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그동안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진실한 마음으로 돌아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자매도 자기를 이십 년 동안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 목사의 말을 듣고 자기가 주님을 만난 것을 같이 기뻐할 수 없는 오히려 회당장과 같이 오해하고 분을 내고 진리를 훼방하는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키기 전에는 더 이상 신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합당한 이치인 것이다.    

이사람뿐인가? 그동안 주님의 역사를 왜곡하고 진리를 훼방함으로 십팔 년 동안을 영적으로 펴보지도 못하고 꼬부라져서 고생을 하는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협회에 와서 주님의 역사로 고침을 받고 기뻐할 때에 이 일을 비방하고 훼방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어느 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목사가 있었다. 자신이 총회장이 되고자 야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자기 휘하에 있던 목사들이 은혜를 받고 골방으로 들어가고 전도현장을 가지고 전도하면서 경건생활을 위해 체육대회도 마다하고 가지치기를 하면서 자기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줄어들어 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가난한 전도하는 목사들에게 매월 5만원씩의 선교비를 안준다고 하여 전도하는 이들의 발목의 힘줄을 끊어버리고 전도현장을 황무케한 일도 있었으며 지역마다 노회마다 지방회마다 전도하는 목회자들을 범죄인취급을 하듯이 다루고 재판을 받게 하는 일도 있었으며 신학교 강의에서 탈락을 시키고 길거리에서 예수천당을 하며 전도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신학교 교수직에서 쫓아내는 일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교회를 살리는 것이 이단이 하는 일인가? 이단은 교회를 살릴 수도 없고 영혼을 살릴 수도 없으며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단은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며 주님의 편이 아니라 마귀의 편에 서서 교회를 망치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의 몫이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로 이단이 될 수도 없고 거짓선지자도 될 수가 없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단이 될 수 없는 것은 이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이라고 비방을 했어도 예수님이 이단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불렀지만 바울은 이단이 될 수가 없었다.

천주교에서 마틴루터를 이단이라고 몰아세우고 죽이려고 하였으며 요한 칼빈을 이단으로 공격을 한 결과 그에 대한 변론으로 나온 것이 그의 불멸의 저서 기독교강요인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성공회에서 전도를 하고 노방설교를 하는 요한 웨슬레를 이단이라고 죠지 휫필드로 이단이라고 얼마나 많이 정죄를 하고 쫓아냈는가? 영국의 감리교회가 이 일을 잃어버리고 요한 웨슬레와 같이 전도를 하는 윌리암부츠목사를 전도한다는 이유 때문에 전도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다가 안 되니까 파직을 하고 좇아낸 것이 역사 속에 있는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전도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면서도 칼빈을 자랑하고 요한웨슬레를 자랑하는 이들은 그들의 인격이나 정신상태는 물론이요 신경계통이 이상해진 사람들이 틀림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고 그 이전에도 있었고 그들의 계보가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29-39).

저희는 선지자들을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명하는 자들이다.
저들이 의인을 핍박하는 것은 단지 저들의 조상의 양을 채우는 것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저들은 뱀 같고 독사 같은 자들이다.
저들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자들이다.
저들은 오늘날도 주님이 보내신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 곧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채찍질하고 이 동네서 저 동네로 구박을 하여 쫓아내는 일들을 하고 있다.

예수전도협회가 이 교회에서 나가라면 저 교회로 가는 일을 지난 수십 년 동안 되풀이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때는 그 교회 목사님이 쫓아내고 어떤 때는 종교적인 교인들이 쫓아냈다. 그 수를 헤아리면 수백 번은 쫓겨났을 것이다.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에서도 쫓겨나고 영국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이십 년 동안을 그렇게 유리방황하면서도 주님의 은혜로 아직도 일할 곳이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 선지자 대접을 하는 이들이 있고 주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진실한 주님의 종들이 있고 교회가 있다. 이는 참으로 눈물이 날정도로 놀라운 일이며 그것은 전적인 주님의 역사이다.  

저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주님이 파송한자들을 돌로 쳤지만 주님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과 같이 몇 번이고 모으려 했으나 주님의 날개아래 들어가기를 원치 아니하는 자들이다.

저들의 결국이 무엇인가?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저희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저희의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될 것이다. 말틴루터와 칼빈을 핍박했던 천주교가 황폐화되어 인간의 종교로 타락하지 않았는가? 모든 제단을 폐하시고 제사를 끝내시고 다 이루시고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한 영원한 온전한 제사를 비웃듯이 제단을 차려 놓고 미사를 드리는 저들은 저주를 받은 무리들이다. 저들의 영혼이 황폐화되어 하나님이 만들지 말라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절을 하고 그것을 숭상하지 않는가? 요한 웨슬레를 버리고 죠지 휫필드를 핍박했던 성공회는 시작부터가 영국국왕의 사유물처럼 된 인간의 교회가 되지 않았던가? 윌리암부츠를 징계하고 쫓아낸 영국의 감리교회가 황폐화되어 예배당을 무수히 필아 넘기는 황페함이 저들에게 임한지가 오래 되지 않았는가?

저희의 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뜻과 생각이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의 단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없는 저들만의 교회인 타락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를 대적하고 훼방하는 교회는 반드시 영적인 황무지가 될 것이다. 지금 그와 같은 징조를 보고 있지 않은가? 세상죄인들까지도 교회를 비웃고 있지만 교회가 저들을 대항할 힘이 없고 거룩함을 상실한 교회가 되어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말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반드시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 황폐하기 때문에 버림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흑암이 저들을 두르고 어둠속에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귀신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된 자를 고쳐주셨을 때에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비방을 하였다. 그때에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0-32).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이는 주님을 반대하는 일과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며 그뿐 아니라 이를 비웃고 판단하는 자리에 들어간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일을 해치는 자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나라의 반역자인 것이다.

사람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만 주님을 통해서나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주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은 주님을 훼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함을 받지 못한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데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가짜라는 말이다. 거짓선지자가 괜히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를 믿을 수 없는 반열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 곧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베드로는 잡혀 죽기 위해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도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벧후 2:11,12).

저들은 천사도 훼방하지 않는 것을 훼방하는 겁 없는 이들이다.

그리고 저들의 결국은 심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양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겁 없는 어리석음이라는 말이다.

저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저들은 불쌍히 여김을 받지도 못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이들이다. 그것은 심판이다.

미혹하게 하는 영의 역사는 주님이 그렇게 내어버려 두시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것이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단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들과 같은 반열에 들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사 믿게 하시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한다. 어쩌면 나도 저들과 같은 반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긍휼하심이 나에게 나타나시고 나를 이끌어 그의 영생의 진리에 이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이고도 전적인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들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저들을 미워하기에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주께 받은바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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