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에 미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 겨울이 오고해서 두꺼운 운동복 상의가 하나 필요하여 백화점에 들렀다. 마침 연말 세일을 하는 중이고 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사이즈도 보지 않고 그냥 입어 보았다. 주변에 거울이 있는지를 찾고 있는데 백화점 직원이 지나가고 있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보이나요?”(How do I look?)

좋아 보여요.”(Look nice!)

 

그래서 그냥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고 호텔방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거울 앞에서 입어 보았는데 사이즈가 형편없이 큰 것이었다. 어깨도 축 늘어지고 주머니도 저 아래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벗어서 사이즈를 보았더니 X-Large이었다. 나는 M 사이즈인데 미국의 엑스라지는 한국사이즈 내 치수보다 두 사이즈가 높은 110이나 된다. 황급히 백화점으로 가서 사이즈를 바꾸어 왔다.

다시 호텔방에 와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얘 오늘날도 교회 안에 사람들이 좋아 보이는 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니?”

……

모름지기 성도는 나의 기쁨이 되어야하는데 그것은 신경도 안 쓰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사람의 칭찬을 따라 그에 맞추어 행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만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그래서 그들은 자기 몸에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교회 안에 사람들이 좋아 보인다는 말에 속아서 내 눈은 고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손가락질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질이 낮은 종교인의 생활을 하고 있단다.”

 

어렸을 때에는 학교에서 교회 다니는 애들이 아이들에게 욕을 먹는 것을 많이 본 것도 그들이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의 생활이 다른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교회에서는 칭찬받는 아이였지만 가정에서는 그럴 리가 없는 밑바닥까지 노출된 죄인이었으나 나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산 것은 집에서는 그렇게 살지만 교회에 가서는 나의 육신의 열심과 행위로 나를 꾸미고 목사님에게 교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하고 또 거기에 상응하는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은 집사의 옷을 입고 있으나 1세기의 교회의 일곱 집사들에게 미치지도 못하는데 자기모습을 아파하는 이들도 없고, 주님 앞에서 그들과 같이 되고자하는 소원이나 기도나 믿음도 없이 살고 있다. 어떤 이는 장로의 옷이 자기 자신의 믿음보다 더 크다는 것에 대한 자각도 아픔도 없이 자신을 교회 안에서는 장로로 스스로 여기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인 상태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목사라는 큰 옷을 입고도 복음도 믿음도 사명도 없이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겉으로 보여 지고 나타나는 것과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이 다른 것은 큰 딜레마이며 그것이 차이가 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크나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주님도 이전에 사람에게 좋게 보이고 종교적으로 충실했던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3:25-28)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뱀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저주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3:33)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우리 중에 누구는 이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장담하지 못한다면 재를 무릎 쓰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함으로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없이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50:22)

 

교회는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모임이 되기가 쉽다. 그러다보니 영적기준에 앞서 육신적인 기준이 요구되고 그에 맞추어 살려 하는 시험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내면세계의 믿음은 보지 못하고 외부로 나타나는 행위만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칭찬하기가 쉬운 곳이 교회이다. 열매를 보고 판단을 한다면 몰라도 단순 행위만을 보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주일성수를 한다.”

예배마다 빠짐이 없다.”

교회 행사마다 참여한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한다.”

십일조를 하고 모든 헌금을 빼놓지 않고 잘한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겉으로 보이는 행위가 그 사람의 믿음인 것으로 생각을 했다가 실망을 당하기도 하고 시험에 들기도 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자주 또 많이 일어난다.

 

나는 거듭나는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살게 해 주시는 은혜와 훈련을 받고도 한 오년쯤 되어 교회생활에 발을 들이고 교회생활 속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교회 안에서 이전에도 보았던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육신이 육신을 칭찬하는 일들을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칭찬에 맞추어 행하고자 하는 교활한 생각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으로 내 마음을 높이고 교만해지는 일들이 싹이 나기 시작했다. 교회생활의 재미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친밀히 살았던 영적인 생활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죄를 지을 생각이 마음속에서 꾸물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다녔기에 드러나는 죄는 짓지 못하고 속으로 남 몰래 죄를 짓고 자 하는 유혹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게 하신 것이다. 경찰이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병원 대기실에서 사람이 이렇게 죽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릴 때에 주님이 나를 만나주셨다. 나는 그 주님 앞에 고백했다.

 

주님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몰라서 또 생명이 없어서 그랬다 해도 예수를 믿고 나서 7년 동안을 잘못 살았습니다.”

 

주님은 잠자코 계셨다. 주님이 내 마음에 넣어주시는 깨달음을 계속 고백했다.

 

주님 죽음과 함께 없어질 것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내 생명만이 아니라 처자식도 총각 때 산 집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도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도 내게 있는 재능과 재주도 죽으면 다 없어지는 것들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고 다 알지만 열심히 살수록 살면서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헛되고 허망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을 빼앗기는 삶을 산 것이다.

 

이제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

영혼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가오는 주일부터 내가 성경을 가르치던 청년들 이십 명을 데리고 인천에서 당시 제일 컸던 병원으로 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매주일 전도를 하면서 주님이 나갈 때마다 열매를 주시고 예배 때문이라기보다는 전도 때문에 주일이 기다려지는 변화가 내게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칭찬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핍박이 있고 욕하고 배척하는 길에서 세상 죄인들을 붙잡고 하나님의 사랑을 눈물로 전하면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연약한 입술로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믿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사람의 칭찬이 내게 들어오지 않았다. 귀에는 들어와도 마음까지는 들어오지 않았으며 어느 누가 혹 목사님이 칭찬을 해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혹 부정하지 못할 때는 주님 앞에 기도했다.

 

주님 저 칭찬하는 말이 내 귀에는 들렸어도 내 마음에는 들어오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전에는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공허함이 있고 직장에서 성경공부모임을 하고 언론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조찬기도회를 하는 것을 내가 주도해도 마음의 공허함을 이기지 못했다. 특히 연말이 되면 공허한 마음에 내가 열심히 뛰긴 뛰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뛰었나 하는 마음에 허탈함을 이기지 못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을 구하지 않았으며 또 사람의 칭찬을 구하지는 않았어도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을 즐기고 좋아했기 때문에 오는 공허함임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전도를 하고부터는 주님이 주시는 칭찬을 받으면 사람이 몰라주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로부터 하루하루 매주일 그리고 매달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해서 살게 되었다. 연말이 되어도 해마다 찾아오던 공허함이 전혀 없었다.

 

이제는 내 영혼에 맞는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믿음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 옛날에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에 사울이 자기의 갑옷을 입혀 주었을 때에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그것을 벗어버리고 나가서 물맷돌로 골리앗을 꼬꾸라뜨리고 죽이고 승리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사울의 갑옷과 같이 남들이 하는 칭찬에 맞추느라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좋아하고 그것을 원하고 바라고 또 부러워한다.

문제는 교회 안의 칭찬으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칭찬과는 상관이 없으며 그런 줄 알고 세상에 나가면 여지없이 마귀에게 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혹시 약간이라도 큰 사이즈의 옷을 입고 그것을 맞는 줄 알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의 기준에 맞고 하나님의 기준에는 맞지 않는 사람인지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속히 하나님 앞에서 그의 기뻐하시고 칭찬하심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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