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주신 영감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성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성에 치우칠 때에는 감성이 손해를 보게된다.

또 감성에 치우치면 이성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잃어버림으로 미련함으로 그릇 행하고 그릇가서 죄를 짓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 "지혜"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지혜를 얻으라고 가르친다.


(잠 4:5)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잠 4: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잠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가 미련한 자요 미련한자는 이성이나 감성에 편향되어 치우치는 자를 말한다.

곧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상실한 인격이 미련한 자요 지혜가없는 자이다.


여기서 지식은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같은 말을 9장에서는 지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러므로지혜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루면서 진리를 행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제자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베드로는 이성적인 사람이기 보다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요한과 야고보도 우뢰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주님게 받을 정도로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러가하면 나흘이나 굶은 오천명을 앞에 두고 떡값을 계산했던 빌립이나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 오신 것을 믿지 못하고 주님의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옆구리의 창자국에 자기 손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던 도마는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히 오순절에 지혜의 성령을 받아서 이성과 감성이 균형이 잡힌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생활을 보여주는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일한 지혜를받아서 이성과 감성이 균형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 지혜의 성령을 구하고 그 성령께서 후히 주시는 지혜의 부요를 누리는 삶을 사는 주의 제자들이 되는 은혜를 받자.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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