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감동하심

 

이번에 전도여행 가시나요?”

글쎄요. 기도해 보겠습니다.”

기도하면 주님이 전도를 가지 말라 하실까요?”

……

주님이 이미 명령하신 것을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주님을 시험하는 악한 일이예요.”

……

이를테면 육신의 아버지가 물을 한 그릇 떠다 달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것을 분명히 들었는데 떠다 드려야 하는지 아닌지를 본인에게나 타인에게 다시 확인을 하려고 하고 그에 대한 또 다른 감동이 있어야만 실행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아버지를 업신여기거나 우롱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면 모르나 이미 분명하게 의사 표시된 것을 다시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지요.”

……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신 명령을 또 다시 성령의 감동으로 확인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교만해도 보통 교만한 일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이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비단 전도여행을 가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성령이 감동을 주시면 그때 한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아니 있었다. 십일조나 전도를 하는 일이나 주님이 분명히 명령하신 말씀인데 그것을 또다시 물어보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는 무식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주일날마다 교회를 가야 하는지 아니 가야 하는지 일일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아침에 밥을 먹어야 하는지 굶어야 하는지 점심식사는 무엇으로 먹을지를 그 때마다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물을 마실 때도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하고 커피나 차를 마실 때에도 성령의 감동하신을 따라서 마셔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실상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또 그렇게 매사에 주님께 묻고 감동을 받아서 행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닌 것이 나의 오랜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정한 시간에 기도생활 조차도 아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십일조나 전도나 어떤 것도 기도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한다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텔레비전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볼 때도 기도를 해보고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보았다는 말인가? 생각하자면 세상에 하찮고 쓸데없는 일을 할 때도 많이 있을 터인데 그것도 기도해 보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했다는 말인가?

 

사십 년 전의 일이지만 속회 모임에서 어느 여자 집사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집사님, 저는 성령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요.”

……

이를테면요 머리핀을 꽂는 것도요. 오늘은 초록색으로 해라 또 오늘은 빨간색으로 해라. 이렇게 자상하게 가르쳐 주셔요.”

 

나는 그 여 집사의 말을 듣는 순간에 그것이 귀신인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그에게 말을 해 주었다.

 

그런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에요. 그것은 귀신의 역사예요.”

……

 

그 여 집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분은 숙대 영문과를 나오고 남편도 역시 집사인데 서울대 공대를 나온 사람이었다. 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 부부이지만 구원도 받지 못하고 예수가 없으니 날마다 자기 똑똑한 것을 내 세우며 부부싸움을 하고 동네에 소문이 나도록 아주 요란한 가정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이 여 집사님이 마음을 둘 데가 없었던 나머지 자아를 포기하는 순간에 그의 안에 귀신이 들어 온 것이다. 남편은 무릎의 물렁뼈가 녹는 희귀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서로 싸우는 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 날 부부 싸움을 하다가 분을 이기지 못한 부인이 충동적으로 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부러진 팔을 아픈 줄도 모르고 휘두르면서 뛰어 다니기를 한참을 했다. 귀신의 역사이었다. 그리고 우리 속회는 그 부부를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를 했고 결국 그 남편의 병이 고침을 받았고 그 아내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 그리고 그 후 한참 후에 그 여 집사님은 전도사가 되어 교회를 떠났다.

 

그와 같이 귀신이 들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성령을 오해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며 십일조나 전도나 다른 무엇이나 자기가 하고 안하는 것을 성령의 감동하심에 핑계를 돌린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악한 일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같은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하지 말라고 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것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게 하시기 위함이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거역하라고 오신 것이 아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3)

 

성령께서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주님의 것을 가지고 가르치시는 것이지 다른 것을 가져다가 가르쳐 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16:14-15)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 주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6)

 

곧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은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버리고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말씀이요, 생각나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사실 가만히 살펴보면 전도나 십의 일조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전도하기를 싫어해서 기도와 성령의 감동을 빙자하여 전도하지 아니하려는 것이다. 십의 일조를 드리기가 싫은 나머지 성령의 감동이 없다며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가 이렇게 잘 말하여 주고 있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10:28-31)

 

모세의 법을 폐한 자들도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역사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하여 준다. 그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엎드러져 일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하물며 은혜의 성령을 욕 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는가?

 

히브리서 저자는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그의 말과 같이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12: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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