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지요.

이번전도여행은 이전과는 달리 10년 전, 15년 전에 참석했던 분들이 은혜를 사모해서 참석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모인 인원은 200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으나 이전과는 다른 은혜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모님은 15년 전에 훈련을 받고 전도여행을 다녔었는데 윤아무개의 무슨 기도원이니, 최아무개의 전도훈련이니, 전아무개 목사의 무엇이니 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생각을 해보니 그런 곳들이 다 율법을 가르치고 행위를 강조하는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중심이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는 점점 희미해져갔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지난해부터 영적인 목마름이 극에 달해서 이전에 은혜를 받은 것이 희미하게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재의 책꽂이에 묵혀있던 생명샘을 꺼내서 읽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래 이게 진짜 은혜야 이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하는 생각에 생명샘에 있는 협회의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전화를 했는데 전화번호가 그대로여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물어 보는 가운데 ‘아! 나는 그때 받은 그 은혜를 다 잃어버렸는데 아직도 여름전도여행도 목회자 훈련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모하는 마음이 끓어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지난 1월이었는데 그 시간부터 여름이 오기를 여러 달 동안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이번에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모님은 마지막 시간에 나와서 이전에 십년 전에 참석해서 은혜 받은 것을 간증을 하면서 당신의 교회에서는 찬송가는 한곡도 부르지를 않는데 여기 와서 찬송가만 불러도 은혜가 다시 살아남을 경험했다고 그렇게 어린아이같이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모님은 어떤 목사님과 같이 왔는데 그 목사님도 이전에 한량없는 은혜를 받고 새물결인지하는 지식적인 모임에 빠져서 영적인 실재와 은혜를 다 상실했습니다. 잃어버린 은혜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에 참석을 했는데 첫날 보았을 때에 얼굴표정이 그렇게 어두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별보고회 때 그 목사님이 말하기를 이제는 지식의 구름이 걷히고 영적인 실재가 찾아지는 것 같다고 주님을 지식적으로만 듣고 배웠는데 이전과 같이 인격적인 주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느껴진다고 눈물로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도를 나가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회개를 하고 죄를 자복하는 가운데 채 이틀도 되지 아니하여 그 목사님의 얼굴빛이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목사님과 개인적으로 인사만 나누고 말을 나누지는 못하였으나 그 얼굴을 보면서 은혜가 회복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해와 같이 새벽시간에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목회를 하라고 했는데 교회를 한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복음전도를 하라고 명하셨는데 복음이 없는 전도를 한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주님을 따르기 보다는 사람을 따르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사람의 말을 들은 것들과 순종보다도 제사를 더 중히 여긴 일들 그리고 내면의 영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외식하는 신앙생활 그리고 하나님의 유전인 말씀은 버리고 조상의 유전인 교리에 치중한 것들, 주님 안에 거하기보다는 일에 힘을 더 쓴 것들, 신앙생활은 아니하고 교회생활만 한 것들을 책망을 하면서 마지막 때가 되었기 때문에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을 것이라고 말씀을 전했을 때에 말씀을 듣는 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가지고 두 주인을 섬긴 죄를 회개하고 돈을 사랑한 죄를 회개했다. 세상을 사랑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셋째날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주님은 나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기차바퀴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굴러 가는데 그중에 두세 바퀴만 구르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교회가 한 방향으로 가야지 가지 않거나 역행하는 교회는 탈선할 수밖에 없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말씀을 전할 때에 큰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심력과 구심력을 가지고 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영적인 구심력이 있는 교회와 세상으로 세상으로 달려가는 원심력이 있는 교회의 결말을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도 천안의 한 병원에서 나에게 숙소로 입원실 특실을 내어 주었습니다. 나를 특별히 사랑하는 그 병원의 원장인 집사님은 내가 사람들에게 악한 말을 듣고 오해를 받는 것을 항상 아파했습니다. 아마도 가까운 사람들 중에 인터넷에 떠도는 악한 말을 들어서 나를 비방하는 말을 많이들은 것 같았습니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 집사님이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 왔습니다. 죄자백을 강제로 시키는지 강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도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자백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 일서를 들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들인 우리 중에서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훈련을 하면서 오래전에 있었던 말을 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할 때에 어느 날 밤에 수원의 어느 목사님이 자신의 아픈 죄를 울면서 자백을 했는데 그 죄는 교회를 건축 중인데 어느 집사의 남편이 건축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그 남편은 불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집사와 간음죄를 지은 죄를 아파하면서 회개를 했고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 같이 울면서 그 죄를 아파했습니다. 개중에 두 사람이 숙소에 들어가서 “목사가 어떻게 그런 죄를 지을 수 있느냐?”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전해들은 내가 그 다음날 아침에 시작을 하면서 기도회 중에 “지금 자기가 지은 죄를 다 봐도 못 보는데 남의 죄가 보입니까?”라고 강력히 책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해보니 그 죄를 지은 목사님을 비방한 두 목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이 없더라고 말을 하면서 그들은 우리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아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자백하는 것은 아무데서나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예수를 믿는 형제들 사이에서 하는 것이며 죄를 다 같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장로님이 교회를 너무 비방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을 해주었습니다.

“삼십년 전에 내가 길에 나가서 전도할 때에 교회 안에서 나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악한 사실들을 불신자들의 입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교회가 변화되지 않으면 전도를 하는 것도 소용이 없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말씀을 전할 때마다 교회의 갱신을 말한 것이지 뜬금없는 비방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교단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오래전에 나를 사이비로 몰아세웠을 때에 우리가 자료를 주고 반박을 해서 만나서 타협을 하기로 했습니다. 호텔에서 만나자는 것을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 돈을 낭비하지 말자고 그 교단본부로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회의실에서 여러 시간을 말하면서 오해가 풀렸습니다. 교단측 위원들 여섯명이서 자기들이 사과문을 작성을 해가지고 오겠다고 내려갔습니다. 사과문을 써가지고 돌아와서는 제 앞에서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자기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유빈장로를 만나보니 인품이 훌륭하다고 말을 했노라고 하면서 사과문을 받아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사과문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한 우리들은 그대로 받기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주간에 그 교단 신문에 “이유빈장로 일행이 교단본부를 찾아와서 사과를 하고 갔다."는 허위기사를 실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인들의 수준이라고 내가 말하자 그 집사님의 얼굴에 수심의 그늘이 다 사라졌습니다. 여름전도여행기간이었지만 마귀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악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을 주님이 해결해주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청소년집회 때에 전했던 노르웨이청년의 이야기는 또다시 교인들의 마음을 울려 놓았습니다.
나오미가 요단강을 거꾸로 건너서 남편 엘리멜렉을 잃어버리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잃고 룻과 함께 요단강을 다시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사랑이라고 말을 하면서 우리도 요단강을 거꾸로 건넜던 죄를 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르신과 르말리아의 아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가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사람들도 두려워하고 자녀들도 무서워한 것이 믿음이 적은 이유요 마귀에게 속는 일임을 말했습니다. 

나의 딸이 지난 십이년 동안 여름전도여행에 와서 어린 아기들을 보는 일만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전도를 나가고 싶고 은혜도 받고 싶어서 고병훈장로에게 이번에는 아이들을 보는 일에서 빼 줄 것을 간청했지만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는 안타까워했습니다. 전도여행 이틀째 되는 날 점심식사시간에 식당에서 밥도 안 먹고 울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전도에 참석하고 싶고 은혜를 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전도를 나갔습니다. 또 집회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그대에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올라와서 은혜를 받고 있지만 저 지하실에서 우리 딸은 이 자리에 올라오지 못해서 밥도 안 먹고 울고 있다고 전하면서 여기 참석을 못해서 우는 심령에 비하면 우리는 여기에 참석을 해서도 마음이 아직 강퍅하지 않느냐고 말씀을 전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울고 회개하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전도보고를 하면서 어떤 사모님은 전도여행에 오지 못하도록 방해한 어느 집사님을 무서워했던 불신앙을 자백을 했습니다. 어떤 대구에서 온 집사님은 자기가 구미에 살다가 교회 옆에서 살고 싶어서 대구로 교회 옆으로 이사를 왔는데 교인들이 전화도 해주지를 않고 목사님도 심방을 안 해 주어서 미워했다는 말을 했는데 기도회를 하면서 교회안의 영혼들도 고립을 시키고 교회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무슨 정신으로 전도를 나가서 교회 밖의 영혼들을 사랑하겠느냐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가? 가증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면서 기도회를 인도했을 때에 성령의 역사의 절정에 이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별로 모여서 기도회를 하면서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자백하면서 교회마다 사랑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때에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아니요. 제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동안 참석을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 항상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말이 아니요. 내가 미안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주님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그 역사의 현장에서 항상 은혜를 받았지만 멀리 떠나간 사람들은 이 은혜를 이 동일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 항상 우리에게는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강물은 흐르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같이 이 흐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픔입니다. 이 아픔을 이기고 이제는 거꾸로 건넜던 요단강을 다시 건너야할 때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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