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의 하나님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 단어 뜻만 배우는 것은 무익한 것이며 오히려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원어를 가지고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원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어를 공부해서 성경에 사용된 단어의 뜻만을 깨닫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며 중요한 일은 원어를 가지고 숨은 영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성경구절속에 있는 숨은 영적인 비밀을 찾아 내기 전에 그 단어의 시제를 밝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시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과거가 미래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되기도 하고 미래가 되기도 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다른 나라말 번역본의 성경도 그렇지만 우리말 성경은 번역도 원어의 시제를 배제하고 번역을 한 부분이 많이 있어서 잘못된 연구와 잘못된 설교의 근원이 되어 왔다. 또한 동서양의 대부분의 주석책들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시제를 무시한 번역에 근거하여 주석을 달았기 때문에 엄청난 오류를 범한 것들이 많이 있다. 벌쎄 100여년전에 어떤 분들은 그런 것들은 다 쓰레기통으로 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소개하는 말씀도 모든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가 깊은 것이다. 한 날은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다는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용하고자 나아와서 변론을 한다.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자기들이 지어낸 일곱 형제의 비유를 들어서 주님에게 질문을 했다.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2: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2: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2: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2: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주님은 그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한 것이라고 책망하시며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2: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매튜헨리는 그의 주석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으며 야곱의 하나님이었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이 말씀의 요점을 바르게 지적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런 거구나 정도로만 이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이 말씀에 사두개인들이 한마디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 졌으며 무리들이 듣고 그 가르침에 놀랐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 후에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을 차례로 굴복시키시고 그날부터는 아무도 감히 주님에게 묻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이말씀은 놀랍고도 탁월한 대답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매우 경솔하고 또 부주의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나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만 국한 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기에 그 뜻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에서 이요에이미로서 그 시제가 현재이다. 곧 원문에서는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요로 되어 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에서 아니요도 현재로서 우 에스티이다. 우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에서 산자는 살았다는 뜻의 자오인데 현재분사이다. 그러므로 계속 살아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다.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말은 의인이 되었다는 말이고 의인은 영생을 가진 것이다. 영생을 가졌다는 것은 영생을 얻은 때부터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순간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 있다는 말이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붙는데서 하나님의 나타나심 가운데 하나님이 그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때를 기점으로 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은 때는 벌써 오백년이 지난 때이었다. 오백년이 지난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아브라함이 살아 있으며 이삭도 아직 살아 있고 야곱도 지금 살아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것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신 이유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죽은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았기 때문에 산 자이며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거듭나서 의롭다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의롭다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산자의 하나님이 지금 당신의 하나님이 되시려면 당신이 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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