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나와 있는 종말론들은 대부분이 잘못된 것들이다. 그것들의 오류는 종말이 언제인지를 분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종말을 언제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종말론들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이 언제인지를 알았다면 이세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가 끝나는 것이 종말인가? 아니면 세상이 끝나는 것이 종말인가? 성경은 죄가 끝나는 것을 세상의 종말이라고 말씀한다. 구약시대 내내 전하여진 예언의 말씀도 죄가 끝나는 것을 세상의 종말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에 닳고 닳은 교회는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이 끝나는 것이 싫기도 하고 또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세상이 끝나는 것을 종말로 알고 분노하며 허사를 경영하고들 있으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2: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비웃으신다.

 

(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깨달아 알지니라책의 제 3 9장에서 두 가지 말세라는 글로 이미 밝힌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말세와 이세상의 말세 두 가지 말세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말세는 죄악세상이 끝나는 말세요 이세상의 말세는 물질세계인 이세상이 끝나는 말세를 말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도 이세상은 썩어 없어지는 세상이었다. 신약시대에도 이세상은 불타서 없어지는 세상이다. 물질세계인 이 세상에 대한 개념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동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이 없어지는 것에 대하여는 구약의 성도들이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구약의 성도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셔서 이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신 것이다. 아담에게 언약하셨던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죄 사함의 은혜로 말미암아 잃었던 생명을 다시 찾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은혜가 임한 것이다. 구약시대는 흑암에 앉았던 시대요 신약시대는 흑암에 앉았던 자들에게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빛을 비추어 주신 시대이다.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마태의 이 말씀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다.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세상이 끝나는 날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흑암으로 돌아가는 무섭고도 슬픈 날이다.

 

(1: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그들은 흑암에서 살다가 영원한 흑암으로 사라져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은 아무날도 아닌 것이다. 곧 이세상의 종말은 아무런 날도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받고 써지 아니하는 생명을 선물로 받은 그들에게는 이 세상의 종말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 종말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을 종말” “말세” “말일” “마지막 때로 말하고 있다.

하박국은 메시야가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묵시를 보았을 때에 그묵시가 이루어지는 때를 가리켜 정한 때라고 하면서 그것을 종말이라고 말한다.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박국이 예언한 것은 이세상의 종말이 아니다. 인간이 죄에 종노릇하는 세상에 태어나서 일평생을 저주가운데 살던 세상이 끝나는 종말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복음을 전할 때에 요엘서기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주님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부어주실 때를 말세라고 말한다.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님이 오셔서 신약교회를 세우실 것을 예언하면서 그것은 말일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일은 죄악이 끝나는 날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23: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30:24)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48:47) 그러나 내가 말일에 모압의 포로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모압을 심판하는 말씀이 이에 그쳤느니라

 

(10: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3: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4: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또 다니엘은 메시야가 오시는 때를 마지막 때라고 말한다.

 

(11:35)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패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날에 있을 일을 주님은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이것이 그 유명한 칠십이레의 예언의 시작절인 24절의 말씀인데 메시야가 오셔서 이루시고 성취할 사실을 여섯가지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가르쳐 주신 종말은 허물이 마치며”(카라 폐솨) 곧 죄가 끝나는 것이다. “카라봉쇄한다” “금하다라는 뜻의 단어이다. 곧 죄를 안 짓는 거룩함에 들어 가는 것이다. “죄가 끝나며”(하탐 타맘 하타아)로서 하타아는 죄의 행위로부터 나오는 산물인 죄를 말하는데 속죄제사라는 뜻도 있다. 그것을 가지고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그 제사가 영원히 끝난다는 말이다. “하탐봉하다” “멈추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타맘완성하다라는 뜻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한 온전하시고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위하여 다시는 제사 드릴 것이 없게 제사를 영원히 끝내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죄악이 영속되며”(카파르 아온)는 영원히 정죄함이 없는 의인이 되는 신분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원수인 죄인에게 이제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친구가 되어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영원한 의”(쩨데크 오-)가 드러난다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원한 의인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 들려 주셨던 모든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지극히 거룩한 곳에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서 지극히 거룩해진 영혼 속에 성령이 임하셔서 내주하시는 것을 예언 한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것이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기름부으심은 성령을 주신 것이라고 요한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같은 사실을 요엘은 이렇게 예언했다.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2: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살고 그의 안에 거하는 성도는 이세상의 시간관념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곧 죽을 한시적인 육체의 생명을 가지고 살다가 예수를 믿어 구원받음으로 영생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영원을 사는 사람들이다. 영원한 생명은 이세상의 시간과 조건에 얽매이는 생명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영적인 생활을 사는 사람이다. 그것은 현실감각이 없니 사는 바보같은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눈으로 새상사람들보다 몇백배 몇천배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이다 영적인 생활을 사는 것은 원수 마귀가 망가 뜨려 놓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재창조(regeneration)의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영적인 생활을 사는 것은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이기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므로 세상의 끝이 오고 망해도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전쟁이 오고 전염병이 오고 모든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 일어 난다해도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것이다. 영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사는 것도 사는 것이요 죽는 것도 사는 것인 죽지 않는 생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는 이세상에서 초월적인 생활을 사는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기 때문이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2)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자기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지나간 시대에 주를 위하여 목 베임을 당했던 성도들은 아무런 감각도 없을 정도로 담담하게 목숨을 내어 줄 수 있었던 것은 그믿음 때문이었다.

주를 믿는 우리에게는 종말은 이미 지나간 사건일뿐이다. 심판도 다 지나갔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없어진 것이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교회를 다니든 아니 다니든지와는 상관이 없이 다니엘이 예언한 여섯가지 메시야 사역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것을 믿지 못하고 받지 못하여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세상이 끝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것은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종말을 따지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은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이세상이 끝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생을 마감할 죽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지금이나 이전세대에나 어리석게 종말을 따지다가 죽은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는 종말이 지나간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내가 받은 심판을 하나님이 그 아들에게 옮기심으로 심판도 이미 지나간 것을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 전날이 그 사람에게는 종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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