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으셨나요

 

44년 전에 구원을 받은 나는 처음 만난 선교사님이 거듭났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에 그렇다고 했더니 거듭난 사실을 자기에게 말을 해보라고 해서 구원받은 간증을 그에게 했을 때, 그 연세 많으신 미국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간증을 다 듣고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우연히 만난 미국의 어느 목사님도 내가 구원받은 사실을 말할 때에 할렐루야를 계속 말하면서 울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언젠가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미국교회에서 구원받은 간증을 할 때 연세가 지긋하신 백인목사님이 얼굴이 벌게져서 울었다. 그 옆에서 사모님은 어린아이같이 울었다. 당신들이 받은 하나님의 구속하심의 사랑과 내가 받은 사랑이 같고 우리 아버지가 한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교회생활을 했지만 나의 영혼은 교회 안에서 조차 버림을 받은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조부는 평양에서 감리교 장로님이셨다. 피난을 나와서 태어난 나는 그분의 얼굴도 모르고 본적도 없지만 집안의 어른들을 통해서 들은 말에 의하면 어느 날 집을 찾아온 미국 선교사님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 받아서 집의 헛간을 개조해서 예배당을 만들어서 교회가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여덟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대전으로 가서 외가살이를 하면서 장로교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주일학교를 다니고 중고등부 회장을 하고 청년부 회장도 하고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면서 항상 교회 일에 열심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영혼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서 중학교 때에 새로 오신 목사님은 교인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 목사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 온 목사님은 도덕적인 설교를 많이 한 것으로 기억이 되고, 장로님들이 찾아가서 죄인설교를 하지 말라하며 자기들이 죄인이냐고 말했다는 것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가시고 나서 삶이 너무나 가난하여 비참하고 폐결핵으로 6년 동안 피를 토하며 약도 밥도 먹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살다가 어린 동생들 둘을 월세방에 남겨두고 군에 입대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교회를 다닌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쁜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비참해진다는 생각에 다시는 교회도 안 나가기로 했는데, ‘너는 그렇게 교회를 오래 다니고도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느냐?’하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가책을 받아서, 군에서 나누어준 신약성경을 세 번을 읽고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에게 나타나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죄 사함을 받은 구원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나는 구원받던 순간부터 언제든지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면 내가 구원 받은 사실을 자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십사 년 동안을 지내면서 나의 일생에 가장 크고 놀라운 사건이 내가 구원을 받고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영생을 얻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에서부터 내가 구원받은 나의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예전의 나와 같이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자기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목사나 장로나 집사들 각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무수히 많이 듣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그거는 가짜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이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예요라고 말했지만 그런 말만으로는 안 되니까 그 때부터는 나를 보고 예수믿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그것은 다름이 아닌 나의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직장에서 변화된 모습이 확실히 그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날마다 짓는 죄를 용서받고 그 죄를 다시는 짓지 않도록 고침을 받는 은혜를 구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두시간반, 저녁에 두 시간, 세 시간, 그 이상도 그리고 근무시간 내내 주님 앞에 속으로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직장에서나 교회 안에서 열매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교회 생활 속에 들어가면서 그 은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직장에서는 대적하는 불신자들의 눈과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눈이 있었으나 교회에는 하나님과 친하지도 않고 세상과 구별되지도 않은 종교인들의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눈도 있지만 불완전한 종교인들의 눈도 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만을 위하는 영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이 교회만을 위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지만 종교인들의 말도 있다.

게다가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세상의 속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다수가 존재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초신자 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겁고 열정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지 못한 것은 교회 안에 종교인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하다보면 주님의 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이러 저러한 종교적인 환경과 세속의 환경이 영적인 환경을 밀어내기 때문에 마치 구정물 속에 사는 물고기가 한시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듯이 그렇게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초부터 세상과 구별하여 교회를 세우신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 안에 신령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목사는 신령한 사람만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異意)를 달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 본인도 교인들도 목사가 신령한 사람인가에 의문을 가져보는 사람은 교회 안에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교회 안에 어른들이 우리교회 사찰집사에 대하여 말을 하면서 정집사는 참 신령한 사람이야 기도를 많이 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은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1990년부터 목회자 훈련을 하면서 시간마다 오늘날은 목사님들끼리도 누가 신령하다는 말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음을 말할 때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

 

나도 별수 없는 사람이라 교회생활 속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칭찬에 의한 맞춤형 인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원의 즐거움이 삭감이 되기 시작하고 마음이 공허해지고 공허해지는 마음속에 죄를 짓고 싶은 유혹이 들어오게 되었다. 날마다 회개하고 죄용서 받기를 되풀이 하면서 살고 구속함을 받은 은혜를 겨우 유지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는 일이 찾아 왔다. 그것은 교회에서가 아니었다. 날마다 성경책을 들고 다니면서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살았으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날마다 골방에서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살았지만 그것은 기도할 때도 아니었다. 그만큼 나의 영혼이 너무나 황폐화되고 피폐된 상태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아침에 출근길에 찾아 왔다. 길거리에서 통근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가 달리는 택시에 뛰어 들은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인도하여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릴 때에 그 병원 대기실에서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계산할 것이 없이 살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산 것이 죄라는 사실이 깨달아지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으로 회개하고 고침을 받는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다친 팔을 목에 지지하고 며칠 후인 그 다음 주일부터 병원으로 전도를 나갔다. 그때부터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눈을 다시 찾게 되었다.

&l'h !ynIP hy:h !ymiT

(하라크 파님 하야 타밈)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를 직역하면 너는 내 얼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가 된다. 그것은 물론 내 눈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는 말도 된다.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있어서 그에게 영향을 끼치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났을 때에 하나님이 아직도 그 이름이 아브람인 그에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말씀이다.

그의 아버지 데라도 죽었고 그의 동생 나홀도 헤어졌으며 그의 조카 롯과 롯의 처도 떠나가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던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의 일로 숨이 죽었을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이제는 너 나와함께 살자라는 말씀이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눈을 다시 찾았다고 죄를 안 짓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구속의 은혜를 베푸셔서 그의 백성을 삼으신 것은 죄를 다시는 안 짓도록 방수처리가 된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것은 그때부터 짓는 죄를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고 해결 받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도 우리의 육체가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변할 때까지는 아직도 육체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날마다 속죄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아담에게 주신 여자의 후손의 언약은 영생을 얻는 구속의 언약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신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히신 것은 날마다 짓는 죄를 씻어 거룩하게 하는 속죄하심의 은총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하나님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그의 백성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며 깨달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믿는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씻어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구속의 은총이다. 그러나 광야에서 날마다 짓는 죄를 사함 받는 것은 율법과 제사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나 지금이나 악한 자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죄를 안 짓는 것처럼 가르치고 지은 죄를 은폐함으로 외식하도록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들이 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예나 오늘이나 죄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지 않고 스스로 하려고 하든지 다른데 가서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데로 가는 것이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고 인간이 자기들을 위하여 종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 숭배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제사와 예배는 마귀에게 드리는 것이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32:16-17)

 

모세의 말을 주의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찬송도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래로서 찬송을 부른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32:17-19)

 

그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기 위안을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 위로를 받는 복음성가의 효시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위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린 것이다. 오늘날도 그와 같은 교회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에게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이 무색하고 전혀 불필요한 인생을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구원을 받고 나서 죄를 안 짓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받은 사람이 된 것이다. “머리털보다도 더 많던 내 죄가 눈보다 더 희어졌네라는 찬송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부를 수조차도 없었던 찬송인 것은 그때는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날마다 짓는 나의 죄가 머리털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에 좌절할 때마다 하나님은 속죄하심의 사랑으로 나의 영혼의 더러움을 씻어 주시고 가까이 해주셨다. 나는 예수를 믿고 나서도 지었던 무수한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간음했던 죄를 용서받고 아내에게도 죄를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았다. 예수를 믿고 나서 깨달아진 예수믿기 전의 죄도 주님이 깨닫게 해주는 대로 자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예수 믿기 전에 교회 헌금을 훔친 죄도 자백하고 그 교회에 돈을 갚게 하셨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피 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나는 거의 날마다 아내에게 책망을 받고 자녀들에게도 책망을 받는 일을 하곤 한다. 그 때마다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다. 혹시 누가가 나를 죄를 안 짓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외식한 죄를 지금 회개한다. 외식한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

 

구속함을 받고 말씀으로 고침을 받아 거룩한 인격이 된 사람은 더 이상 고칠 필요가 없고 죄를 안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죄라도 아파하면서 회개하여 용서받음으로 날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에 나아가 씻김을 받는 거룩함으로 사는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13:1)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은 십자가의 주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피 흘리신 창자국이다. 그의 흘리신 피가 한없이 흘러서 우리의 죄를 씻어 정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영어로 “justified”라고 한다면 날마다 짓는 죄를 씻어 거룩하게 한 것은 “sanctified”라고 하는 것이다. 정화시킨다는 뜻의 “purify”라는 말도 옛날에 어느 미국선교사님이 같은 뜻으로 쓰기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다윗의 족속은 다윗이 자손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고 예루살렘족속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안팎의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자기의 힘으로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하고 지은 죄를 스스로의 힘으로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 그것을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율법주의자들인 종교인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으면 교회는 예수를 말하기조차도 힘들어지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를 말하기조차 힘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간증도 그 안에서 사라지고 속죄함의 은혜를 말하면 죄인취급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죄를 자백하기를 꺼려하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하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 없는 종교단체로 전락을 하는 것이다. 자연히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 초보처럼 여겨지고 그것을 거듭 말하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지고 급기야는 예수를 말하는 것이 거의 필요 없는 교회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오셨을 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사실인 것이다. 그들은 유월절을 유대인의 명절로 만들어 버렸으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아버지의 집 성전을 이미 오래전에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그 안에 종교적인 강도들로 득시글득시글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 정치적으로 결탁하여 제사장들의 수가 많았던 사두개인들은 거부가 되어 있었으며 바리새인들도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종교재벌들이 그 시대에도 많이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가난하여 살기가 궁핍하였는데 하나님을 빙자하는 종교지도자들은 그 부가 극에 달하도록 넘친 것이다.

 

지나간 날들을 회상을 해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주일학교에서의 생활은 즐겁기만 했던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중학생이 되고나서 어른들이 드리는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그리고 두 분의 장로교 목사님들로부터 도덕적인 설교를 들으면서 착한 사람이 되라라는 말만 들었다. 집에 심방을 와서도 홀어머니에게 잘 해라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나의 어머니도 그 때는 구속함의 은혜를 받지 못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 때에 어머니가 어느 기도원 집회에 갔다 오셔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사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당신이 죄의 유혹을 받았으나 주님이 건져 주신 사실도 기쁨으로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이 나의 복음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군에서 주님의 나타나심의 은혜를 받아서 구속하심의 은혜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생활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죄에 빠진 친구를 주 앞으로 인도하기를 힘을 쓰다가 그가 입사동기생이 다니는 교회를 같이 다녀주면 예수를 믿겠다고 해서 그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때 결혼식 주례를 해주신 그 성결교회 목사님은 강단 위나 아래에서 복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들 앞에서도 음란한 말을 할 정도로 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다닌 교회 목사님은 교인수가 수천이 되는 교회의 목사요, 부흥강사이었으나 슬프게도 그가 구원받은 간증을 강단에서 말하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냥 어느 날 불이 임했다고만 했다. 그는 강단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사를 해서 나중에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도 수백 명이 모이는 교회 목사이지만 구원받은 간증은 못하고 깡패질하고 도박하고 술먹고 하다가 부흥회에서 불을 받아서 그 모든 것들이 다 끊어지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었다는 말만 되풀이 했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과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주신 사실을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나를 지나쳐간 다섯 명의 목사님들을 보면 각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믿어짐으로 각각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한 사람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목사가 아니지만 사람만 만나면 기회만 주어지면 끊임없이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구원해주신 구원의 간증을 어김없이 했다.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에게 직장에서 거의 모든 직원들에게 교회에서도 교인들에게 빠짐없이 구원간증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만난 목사님들은 강단에서 그런 자기 간증을 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들이 일반적인 은혜와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개인적인 십자가의 은혜를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KBS 모임을 만들기 전이나 후나 그 모임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날마다 구원을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남자 다섯 명이 시작을 했으나 오 년 만에 삼백 명이 넘는 모임이 되고 그들 중에 70-80%가 불교신자들과 불신자들이었는데 예수를 믿게 되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교회 안에서 전도모임을 하면서 처음에는 단 20명이 시작했으나 이 년 반 만에 전도하는 교인들이 300명이 된 것도 모일 때마다 구원을 말하고 구원을 확인하고 구원을 피차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교회가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를 더하게 하신 것도 그들은 날마다 구원을 말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나치면 안 된다.

그 옛날 가나안땅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섞여 살면서 이스라엘에게는 옆구리의 가시가 되었던 것에서 지나 오늘날은 오히려 구원받지 못한 구원의 간증을 할 줄 모르는 거짓 종교인들이 교회 안에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를 물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죄인들이 구원을 받아야 그것이 참된 교회, 살아 있는 교회가 아니겠는가? 오래전에 전도할 때에 우리 청년이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청년에게 나 목사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청년이 목사님도 예수를 안믿으면 지옥갑니다라고 했는데 그분이 청년이 달고 있던 명찰을 유심히 보더니 , 나 그 교회 목사 잘 알아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은 그분에게 우리 목사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라고 했는데 그분은 황황히 피하여 도망을 갔다고 한다. 지금도 그분의 말을 곱씹어 보면, 예수를 믿는 것보다 목사가 된 것이 더 큰 증거인 것처럼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마도 지금 이런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에스겔 사경회를 하면서 이런 문제의 엄중함을 말하면서 주변 목사들 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피차에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목사님은 아픔으로 기도를 하면서 당신이 노회에서 만난 목사들 중에 구원의 간증을 들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가서 한 사람씩 확인하면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했다. 그분은 또 이런 말을 했다.

 

그분이 속한 노회는 교회설립의 신청을 받으면 해당목사님들의 간증문을 받는 것이 규례라고 했다. 얼마 전에 두 사람이 간증문을 제출했는데 한분은 필리핀 선교사님이고 다른 한분은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분이라고 했다. 필리핀 선교사님의 간증문에는 중학교 때 교회를 처음으로 갔는데 성경을 선물로 받고 그 성경책을 세 번을 읽다가 자기가 죄인인 것이 깨달아지고 주님이 그런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심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간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분은 군생활 중에 너무나 힘들고 마음이 괴로운 가운데 아내를 따라서 교회를 나갔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어서 계속교회를 다니다가 교사도 하고 그래서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신학을 했다는 간증의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 목사님은 두 사람의 말을 하면서 전자는 분명히 구원받은 간증이 있지만 후자는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자세히 묻고 만일 구원을 받지 못했으면 복음을 전하여 주님이 그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구하겠다고 했다.

 

지금의 교회가 새로워지는 일은 세상에 있는 죄인들에게 조차도 욕을 먹는 교회 안에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어느 누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장로라도 목사라도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구원받은 성도들로 채워지고 날마다 죄 용서함을 받아서 거룩해지는 성도들이 되면 각 사람마다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을 사는 거룩한 교회의 부흥이 이 땅에 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부탁합니다.

 

(*.154.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