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자식사랑

 

일 년여 전에 어느 목사님과 사소한 말다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맡은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동석한 몇몇의 사람들에게 의사를 표시했는데, 나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책망을 하면서 서로 날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교회를 물려주느니 차라리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나은 일이라고 주장을 하였고 나는 그에게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 줄 것이 아니라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우선적이며 더 소중한 일이 되는 것이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결과는 안 좋은 분위기와 감정 가운데서 다툼이 끝이 났지만 그 일이 나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잊지 않고 그와 같은 일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게 하는 일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소동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죄인들에게로부터 부도덕하다고 지적을 받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 모독함을 받고 있으며 교회적으로도 그로 인하여 온갖 분열과 싸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주의 핏값으로 사신 그의 몸 된 교회가 마귀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연약하고 악한 영혼들로 담대히 하나님을 거부하고 교회를 욕하는 일을 하게 하고 있으며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야 하는 주의 교회가 온 천하에서 전도의 문을 막고 영혼들을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느 누구를 만나서 질문을 해도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보다는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우선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아마도 그와 같은 일에 연루되고 휘말린 당사자들조차도 말이나 이론으로는 거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의 정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진리를 좇아 사리를 판단하는 것을 제쳐 두기 때문에 그와 같은 후안무치한 일을 행하며 세상의 상식에도 이르지 못하는 모든 불법한 말과 일을 행하는 것이다.

에스겔이 보았던 영광스러운 하나님은 그의 몸에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고 했는데 눈이 가득하신 하나님 곧 요한이 보았던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이가 그들이 하는 말과 일을 모르실 리가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개의치 아니하는 것 같다.

성경을 보면 엘리 제사장도 자식들에게 제사장직을 물려주었지만 그의 믿음은 물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온 나라로 죄의 얼이 미쳐 그릇가게 하고 불레셋의 종노릇을 하게 하는 장본인들이 되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삼상 2:12)

 

사무엘도 그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주지 못하고 사사직만 물려줌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고 결국에는 그들로 왕을 구하는 악을 행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1-5)

 

모세는 그의 자녀들이 아니라 여호수아에게 믿음을 물려줌으로 그의 직무를 이어받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일군이 되게 하였다.

바울도 믿음을 물려주는 대물림의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4:15-16)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 것은 그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데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가 된 것 같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4:15-16)

 

그리고 빌립보서에서는 바울의 일행들을 본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본 삼은 사람들을 보여달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3:17)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무서운 일임을 말하고 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8)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 곧 정욕과 욕심을 믿는 자들이며 저희가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서 부끄러운 것이며 결국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믿음이 없는 자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 결국은 멸망으로 귀결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19)

 

오늘날 바울이 우려했던 일들이 처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말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낯 뜨거운 일들을 벌이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화인 맞은 양심을 가진 사람들의 행위가 교회에서 흘러 넘쳐서 온 세상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식에게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물려주는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교회 세습이라는 부끄러운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식을 섬기는 자들인 것이다.

자그마치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편 기자인 다윗은 말하고 있다.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17:14)

 

그런 사람들은 악인이며 세상 사람이라고 다윗은 말한다. 그들은 이생에서 받을 것을 다 받은 사람들이요, 저희의 분깃은 세상에 있는 것이다.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은 히브리어 헤레크 하이로 살아생전에 받는 몫이 전부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지 않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2,5,16)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자기 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금생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실도 부정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도 부정한다. 모든 것이 자기의 수고와 행운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말 그대로 세상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받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먹는 식물조차도 스스로 노력하고 일해서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실상은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의 것으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악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녀로 만족하고라고 했는데 만족하고는 히브리어 싸바만족시키다”, “채우다”, “가득 채우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자식만을 채워 주고 만족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리고 남은 산업은 히브리어 예테르로서 넘치는”, “초월하는”, “능가하는이라는 단어로서 뛰어난 산업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라고 했다.

이 다윗의 시편말씀이 오늘날 교회를 혈통을 따라 세습하는 악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다. 그들은 교회에서 재물적인 유익을 무한하게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이 기득하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권을 타인에게 끼치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퇴할 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력과 수단과 자기가 수족을 놀릴 수 있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넘치는 산업을 그 규모에 비교할 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대적으로 경력이나 실력이 미천한 자식에게 유전을 하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교회가 목회를 해서 배부르지 못하고 보통의 어려운 개척교회의 목사들과 같이 기본적인 생계도 쉽지 않다면 그것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을 꿈에라도 하겠는가 말이다. 그들이 맡은 교회가 남은 산업이 아니라 모자라는 산업이요 또는 부족한 산업이라면 그것을 자식에게 물려 줄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히브리어 -아주 작은 아이”, “젖먹이또는 유아를 말하는 것이다. 큰 교회를 목회하는 어떤 아버지가 아이를 낳아서 길러서 그 아이로 자기의 뒤를 잇게 한다는 것은 그 자녀보다 선배이며 실력도 있고 경력이 출중하고 능력도 인격도 갖추어진 사람들을 못 본 척하고 무시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가 말한 남은 산업은 어린아이에게 물려주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나 크고 어울리지 않는 큰 산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한 개인이 주인으로 있는 세상의 사기업에서나 또는 동네에 구멍가게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이스마엘의 후손들인 어디 아랍세계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공기업의 수장이 모든 임원을 제치고 아직도 젖비린내가 나는 새파란 자기 아들을 입사시켜 수장으로 앉히려고 한다면 세상은 그런 사람을 반드시 감옥으로 보내 버릴 것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은행의 임원들이나 또 공기업의 임원들이 자기 자녀에게 특혜를 주어 입사를 시킨 것만으로도 수사를 받고 형사처벌을 받으며 불법으로 임용된 사람들을 직권면직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교회보다 열등한 세상의 법이요 도덕률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주께 받은 직분을 혈통에 근거하거나 돈을 받고 물려준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성한 소유권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강도질하는 것이다.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지한 장사꾼들을 가리켜 강도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 세를 받고 거기서 장사를 하게한 제사장들이 강도들이라는 말씀이다. 그 때 당시의 성전의 이권을 돈을 받고 팔은 자들이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교회 안에 쥐꼬리만 한 이권이라도 돈을 받고 팔고 사는 강도들이 많이 있음을 아무라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옛날에 어느 목사님이 불법을 행하기에 왜 그러시냐고 정중히 물었더니 내 맘이지 뭐라고 대답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아니 목사님이 하나님의 마음대로 목회를 하셔야지 어떻게 내 맘대로 하십니까?”라고 점잖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 그도 결국에는 자기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불법을 행했는데, 그의 후임인 아들 목사는 교인들 심방을 가서 앉고 일어설 때마다 몸에서 담배냄새가 너무나도 역하게 나서 교인들이 괴로워했다는 후일담을 들은 적도 있다.

누가 보더라도 어떤 목사가 자기 아들에게 목회를 물려 준 것은 너무나도 잘한 것이라는 칭찬을 사람들로부터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실 수 없는 악한 일을 한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4:18)

 

그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목사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식만을 섬기는 목사이다. 그런 불행한 사람은 이 나라의 교회에서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렇게 금생에서 저희가 받는 분깃이 전부인줄 알고 아버지께 받을 것이 없는 줄 아는 사람은 악인이요 세상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기를 주의 손으로 구원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주의 얼굴을 뵈옵는 것 이상의 축복이 없으며 자기의 만족은 오직 깰 때에 주의 형상을 입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17:15)

 

여기서도 만족하리이다는 히브리어 싸바이다. 앞 절에 자녀로 만족하고곧 자녀를 만족시키고 자녀를 채운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이다. 악인은 재물로 자식을 채워주지만 의인은 하나님이 그의 형상으로 채워주신다. 의인은 주의 얼굴을 뵈올 때에 하나님이 그의 형상을 그에게 채워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을 유업으로 받는 의인의 생활이다. 그와 같은 은혜 곧 날마다 주의 얼굴을 뵈옵고 또 주의 형상을 본받는 은혜는 목사가 아니라도 일반의 무명한 성도라도 사모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진실하고 경건한 목사는 자식에게 주의 얼굴을 뵈옵고 사는 믿음과 주의 형상을 본받는 인격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자식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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