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91편 강해)

 

지금은 재앙의 때요 악한 때이다. 모든 재앙은 하나님이 그의 손으로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재앙은 의인들에게는 미치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재앙은 항상 악인들을 정조준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아닌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은 모든 악에서 건져 주신다. 노아의 여덟식구가 홍수의 재앙에서 벗어난 것과 같이 오늘날 구원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을 사는 사람들은 노아를 홍수에서 건지셨던 것과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 시편의 말씀은 모세의 기도이다. 모세는 사십년동안 불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악인을 치시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며 그와는 반대로 의인을 건지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체험한 사람이다.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대로 고라의 일로 인하여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일만사천칠백명이었다. 그리고 민수기 25장에서도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어 우상을 섬길 때에 그날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사천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레위기에서와 민수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염병을 보내어 그의 백성들이라도 멸망을 시키실 것을 예언을 했다. 그 모세가 말씀한 말씀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피난처이신 하나님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지존자는 지극히 높으신(Highest) 하나님을 말한다. 그의 은밀한 곳은 비밀스러운 곳, 숨는 장소 또는 덮으시는 곳의 뜻을 가진 쎄테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만이 말고 나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말한다. 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골방(타메이온)을 말한다.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것은 곧 하나님과 비밀스러운 장소와 시간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나만의 시간, 하나님과 나만의 장소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생활을 가지는 것이며 그 개인적인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이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동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끼리 끼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친할수록 또는 사랑할수록 단 두사람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고 또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공개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것은 친밀한 관계가 아니며 서로 깊은 사랑을 나누지도 못한다. 가족들끼리 가지는 시간이 은밀한 곳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며 부부간에는 더욱 그런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사적인 시간과 사적인 생활이 많을수록 가까운 사람이 되고 친밀한 사람이 되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주를 믿는 성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한 성도가 어느 누구보다도 이와같은 하나님과의 사적인 시간을 가지기를 목이 마르도록 원하신다. 누구든지 남편보다도 주님과 사적인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 있다. 또 남편은 아내보다도 주님과 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많이 가지고 주님과 관계된 사적인 생활을 많이 하는 것이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인생의 문제가 되도록 가장 결핍이 된 것이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은밀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부족한 것이다. 어떤 경우는 오히려 교회에서 목사와 교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지는데 하나님과 함게 하는 은밀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모임에서 혹시 은혜를 받았어도 얼마 못가서 바닥이 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믿음의 생활의 내용이 없기 때문에 교회안에서 모이는 모임에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해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안에 육신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하여 교회에서 믿음이 있는 척하는 외식을 일삼게 된다. 목사인척 하고 장로인척하며 은혜를 받은척도 하고 받은 은혜를 잃어버리고도 아직도 있는 척한다. 그로 인하여 은혜도 없고 사랑도 없는 교회로 만들어 가며 자기의 영혼과 다른이들의 영혼을 황폐케하고 교회로 형식적인 종교행사만 하는 광야와같이 삭막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비밀회동을 좋아 하고 비밀스러운 시간과 장소를 좋아하여 골방으로 들어가기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모세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자기를 거스릴 때마다 두 번씩이나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과 은밀한 시간을 가졌던 하나님의 사람이다.

 

(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처음 언약의 돌판을 깨뜨리고 나서 모세는 다시 시내산에 올라갔다.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주님도 사십주야를 금식하시기도 하셨으며 일하시는 중에도 날만 저물면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고 예루살렘에 가셔서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시곤 하셨다.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이 말씀들과 같이 주님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실 때에도 아버지와함께 하시는 비밀스러운 시간을 놓치신적이 없으셨다. 우리도 주를 닮아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가지는 비밀스러운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하며 그것도 날마다 일상생활속에서 그런 시간을 확보하고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인 모세가 말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것이다. 사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이 나에게 비밀스러운 장소로 인도하고 나와 비밀스러운 시간을 가져 주시는 것은 나같은 사람이 감히 감당할수 없는 은혜요 축복이요 특권인 것이다. 세상에서도 존귀한자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렵다 못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과 스키쉽을 가지는 은밀한 시간과 장소를 가지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시간인가. 이 은혜를 멸시하고 이은밀한 것을 멀리하고 헛되이 하는 사람은 아주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은밀한 곳에 거하는에서 거하는야솨브로서 단순능동태 동사이다. 그 뜻은 그냥 머무른다. 거주한다이다.

전능하신 자솨다이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 할 때에 엘 솨다이의 그 솨다이이다. 그것은 “Almighty”(전지전능)로서 불가능이 없이 모든 것이 능한 것을 말한다.

그늘로서 그늘 또는 방어라는 뜻이다.

거하리로다인데 이단어는 주목해야 할 단어이다. 이 단어는 동사로서 태는 히트파엘이다. 곧 강의중간태이다. 중간태는 무엇의 영향을 받아서 행하여지는 수동태이다. 그러므로 강의중간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로 영향을 받아서 행하여 지는 것을 말한다. 그의 전능하신자의 그늘아래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로 거하게 된다는 말이다. 곧 우리의 의지와 뜻이나 열심과는 상관이 없이 오직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우리를 그의 전능하신 그늘아래 두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사적인 시간 곧 은밀한 시간에 은밀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이 전능하신 그늘아래 강권적으로 피하게 하심으로 모든 재앙과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았던 모세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렇게 찬양을 한다.

 

(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피난처는 마하쎄로 보호소 또는 대피소이다. 요새는 마쭈다로서 외인이 접근하기 힘든 장소이며 강력한 방어기지를 말한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이렇게 대피소로 또는 요새로 인식하고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은 환난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자가 틀림이 없다.

 

 

2. 재앙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신다고 노래한 모세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위험에서 건지시는지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이 말씀은 이는 저가 올무와 덫과 극심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로 번역해야 한다. “건지실나짤인데 히필형 사역능동태이다. “건져 내다” “구하다라는 뜻이다.

 

(91: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마치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전능자의 날개 아래 피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다윗은 주의 날개아래 피하는 은혜를 항상 노래했다.

 

(17: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17:8)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17:9)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57: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61: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셀라)

 

(63: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다윗왕의 증조부인 보아스는 시모를 따라 이스라엘로 온 모압여인인 룻에게 이렇게 말했다.

 

(2: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님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암탉이 새끼를 그 날개 그늘아래 모으듯이 모으려한 적이 수없이 많았음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는 전신을 방어하는 큰 방패와 또 작은 손방패를 말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대적의 손을 막아 주시고 건져 주시는 은혜를 말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막아 주시는 방어하시는(protection of God) 은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막아 주시는 은혜가 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 나는가?

 

(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밤에 갑작스럽게 놀라게 하는 일과 낮에 날라 오는 화살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밤에 어두움가운데서 알지 못하게 찾아오는 유행하는 전염병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낮에 드러 내 놓고 찾아 오는 전쟁과 같이 황폐하게 하는 파멸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천인이 옆에서 쓰러지고 만인이 우편에서 엎드러져도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이다.

 

(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오직 너는 악인이 받는 보응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은 악인을 정조준하여 일으키시는 것이지 의인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하나님은 당장에 보응하시며 그를 멸하시기를 지체하지 아니하신다.

 

(7:10)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32:41)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하나님은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28:4)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 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 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55:19)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다윗은 자기의 영혼을 위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게 보응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09:20)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이와같이 악인에게 임하는 보응을 하나님은 의인에게 보여 주시겠다고 하셨다.

 

(54:7)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59:10)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시리이다

 

(92:11)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

 

(112:8)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3. 의인에게 재앙이 임하지 않는 이유

 

의인에게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재앙이 임하지 아니한다. 그이유를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여호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으로 거처를 삼은 사람은 하나님이 모든 길에서 지켜 주신다. 곧 지존자와 함께 비밀한 시간을 가지고 장소를 가지는 골방의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에 화가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그의 집에 가까이 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은 악한 자가 그의 사랑하시고 친밀한 자녀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그의 사자들을 명하사 모든 길에서 지켜 주신다.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다윗은 이 은혜를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 것이라고 했다.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가 저를 따라 죽이시는 것이다.

 

(35:6) 저희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 하시고 여호와의 사자로 저희를 따르게 하소서

 

 

(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여 전능하신이의 그늘아래 거하는 자는 사자와 독사가 해치 못하며 젊은 사자와 뱀을 말로 누르는 승리하는 생활을 산다. 주님도 그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4. 건지시는 하나님

 

이렇게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이 건져 주신다. 그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의 이름을 아는 자들이요 주의 이름의 권세를 아는 자들이다.

 

(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의인들이 간구할 때에 응답하시고 저희의 환난 때에 함께 하셔서 건져 주시고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했다.

 

(91: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91: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장수함은 오레크 욤인데 욤은 날이며 오레크는 길다라는 뜻도 있으나 영원하다는 뜻도 있어서 영생이라고도 번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말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곧 전능하신자의 그늘아래 거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은밀한 골방을 찾지도 아니하고 전능자의 도우심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에서 구원은 예슈아로 히필형동사 곧 사역능동태 동사로서 하나님이 구원을 해주시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출하시고 건져 주시고 도와주시는 상태와 승리하고 번성하는 상태를 보여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5. 지존자의 은밀한 곳으로

 

그러므로 모세의 이 시편에서 모든 승리의 열쇄가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시간과 공간 곧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요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날개아래 보호해 주시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그를 모든 환난과 재앙에서 건져 주시고 재난이 그의 집에 미치지 못하게 함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생활을 산다는 말씀이다.

노아가 방주를 타고 어둑캄캄한 배안에서 구원의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에 숨을 죽이며 울었던 때를 생각해 보라 밖에서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는 가운데 그 무서운 창일한 물살이 자기와 자기의 가정에는 미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체험한 노아는 얼마나 놀라운 감격적인 사랑앞에 몸을 떨면서 울었을 가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다윗은 모세와 같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간증한 적이 있다.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2: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허물은 폐솨로 반역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인 죄인의 신분을 말하는 것이다. 죄는 하타아로서 범죄를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에쉐르 아담 로 하솨브 예호바 아온으로서 여호와께서 죄악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번역이 맞는 번역이며 이구문이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간사가 없고는 뒤로 가는데 그것은 아인 루아흐 레미야로서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을 말하는 것이며 그 뜻은 영의 속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여호와께서 죄악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자 곧 영의 속임수가 없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해야 한다. 여기서 죄악은 아온이다.

허물의 사함을 받은 것은 나싸 폐솨인데 그것은 구속함을 받아서 의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죄의 가리움을 받는 것은 카싸 하타아인데 그것은 의인이 되어서 날마다 짓는 죄를 속함을 받는 속죄를 말하며 속죄제사를 말하는 것이다. “아온은 언어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축적되는 악을 말한다고 한다. 그것은 죄인으로 살면서 마음에 축적된 악을 말하는 것으로 죄인의 악한 인격을 말하는 것이다.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속죄함을 받는 것과 삐뚤어지고 상한 인격인 아온인 죄악이 고침을 받는 것은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폐솨와 하타아는 은혜로 주시는 것이며 아온은 의를 배우는 생활로 인격이 거룩해 지는 것이다.

허물이 나싸가 된 사람은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아직도 하타아와 아온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하라쉬라는 단어는 침묵하는 것 또는 혀를 붙들어 매는 것 새기는 것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때에는 종일 곧 밤이나 낮이나 하루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다고 다윗은 고백을 한다. 그 때에 주의 손이 주야로 누르심으로 내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다고 다윗은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생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구절도 순서가 잘못되었는데 순서가 중요한 것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오류를 범한 것이다.

 

하타아 야다-주께 내 죄를 아뢰고(내 죄를 자백하고)

아온 로 카싸-내 죄악을 감추지 아니하리라

아마르 야다 알 폐솨 예호바-여호와께 내가 죄인임을 시인(자백)하여 말하였더니

아타 나싸 아온 하타아 셀라-주께서 내 죄악과 죄를 사하셨나이다

 

(헤트)는 단순한 죄만 아니다. 죄는 죄인(폐솨)를 만들고 범죄하게(하타아) 하며 죄악(아온)을 축적하여 인격을 망가트린다.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아도 날마다 범하는 죄를 이기지 못하고 그것은 죄인이 되었을 때에 축적된 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함을 받고 의인이 되어서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해주시는 은혜를 받으면서 더 괴로운 것이 그 죄가 나오는 인격이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다윗은 범죄하는 것과 죄악이 해결되지 않음으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서 종일 신음하고 낮이나 밤이나 주의 손이 다윗을 누르심으로 몸의 진액이 다 빠지도록 그렇게 씨름을 하는 생활을 살았다. 그것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자기가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인 것을 잊어 버린것만큼 날마다 짓는 범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또 죄를 범할 수밖에 밖에 없는 인격이 고쳐지지 않는 아픔을 가지게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구원받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구원을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처음 주께 나아와 불상히 여김을 받았을 때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범죄와 죄악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살며 인격이 하나도 고쳐지지 않은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가 구원받은 사실을 잃어버렸던 교만을 회개하고 자신이 죄인이었음을 하나님게 고백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 때에 자기의 범죄와 죄악을 하나님이 가져 가시는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여기서 허물이 나싸(가지고가다, take out)되는 것이 구원받은 은혜이며 그런 의인에게 아직도 범죄함과 범죄를 하게하는 죄악이 있지만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했을 때에 그리고 죄를 시인하고 죄악을 숨기지 안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죄와 죄악을 나싸(가지고 가다, take out)하심으로 거룩해지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때에 다윗이 권면하는 말씀이 골방의 중요성이다.

 

(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이로 인하여알 제인데 이렇기 때문에또는 그러니까라는 말이다.

무릇 경건한자는 주께 기도할찌라여기서 무릇로서 전체로서 각가가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곧 각 사람은 이라는 뜻이다.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에트 마짜인데 마짜는 찾아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를 만날 시간을 찾아서” “주를 만날 시간을 만들어서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이부분은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경건한 각 사람들은 주를 만날 시간을 만들어서 주게 기도를 하는 것이다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다윗은 그런 사람에게는 진실로 홍수가 범람을 할지라도 미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오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권면인 것이다. 그럴 때에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에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신 주님을 구원의 노래로 노래하며 그 노래로 나를 가득채워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고 다윗은 말한다.

 

(32: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셀라)

 

그리고 나서 다윗은 시편 32편을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32: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자 지금이 그 때입니다.

지금 지존자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 가는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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