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어느교회에서 집회를 하면서 물어 보았다.
"여러분 하나님이 전도를 기뻐하시나요?"
"예"
"그런데 하나님이 전도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요?"
"....."
"무엇이지요?"
"....."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물어도 답이 나오지를 않아서 정답을 말해 주었다.
"하나님이 전도를 기뻐하시 지만요 그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다시말해서 나를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외모를 중시하고 일을 우선으로 하는 종교적인 환경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슨 일이나 우리의 행위를 기뻐하시는줄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헌금을 내는 것을 기뻐하시고 건축헌금이나 봉사를 하는 것 선교를 하는 것이나 교회일을 열심히 하는 것들과 전도를 열심을 내어서 하고 심방하고 설교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착각을 한다. 물론 그와같은 것들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심에 비하면 그와같은 것들은 그담음의 것들이요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우선순위가 뒤바뀌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힘에 지나고 능력에 지나는 일들을 강요하기도 하고 희생을 강요하기도 하는 육체의 열심과 성의 그리고 의무를 강조하는 일들로 교인들에게 짐을 지우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옛날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신들은 손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주일성수와 예배를 행위로 가르치고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을 꼭지켜야할 행위로 강조하며 주님을 향한 것들을 사람사이에서 판단하고 칭찬하고 비난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들을 한다. 성도들의 심령을 먹이고 흡족하게 하며 성도들의 성품이나 인격이 거룩해지고 주님을 닮아 가는 실속있는 생활은 가르치지 못하고 자기가 한 행위로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위로를 받게 하는 우상을 섬기는 이방종교에나 있을 법한 행태와 같은 일들이 교회안에서 무지무각한가운데 자행되고 있음을 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그래서 잘못된 사람들이 그와같은 종교행위를 가르치면서 그댓가로서의 하나님의 축복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와같은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며 그것은 댓가인 것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댓가는 육신적인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사실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따지고 보면 하나도 빠짐이 없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하는 것이지 몸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없는 것이다.l 다시말해서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인간의 능력과 의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예수와 그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을 믿는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헤로 주어지는 것과 같이 주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는 것이나 은혜를 사모하는 것도 우리의 육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기도를 하고 골방에 들어가며 무릎을 꿇는 것도 주님이 주시는 전적인 은혜 곧 부르짖게 하시는 기도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이다. 교회일을 하고 전도를 하는 것도 사람의 의지와 열심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또 내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당할수 없어서 헌신하고 봉사하며 주님의 일군으로 부르심에 응답을 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나 주님앞에 예물을 드리고 헌금을 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누가 돈이 있기 때문에 헌금을 한다면 또는 하나님의 환심을 사고 복을 받기 위해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사랑을 모독하는 것이요 우상을 섬기는 미신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구약성경 내내 그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아파하신 것이 이와같이 우상과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육체적인 시도들 때문이 아니엇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드리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라도 빠짐이 없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몸도 물질도 하나님이 다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교회에 나오는 행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오며 예배를 드리는지를 보고 계시며 기도하는 행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중심으로 곧 그의 말씀이 그안에 거함으로 그의 뜻대로 기도하고 간구하는지를 보고 계신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련된 음악성을 가지고 노래를 하느냐가 아니라 그찬송을 하는 중심의 심령을 보시고 찬송하는 이들의 생활을 그들의 목소리에 오버램을 해서 다 비추어 보시며 그찬송이 하나님앞에 진실한 찬송인지 거짓된것인지를 금방 다 아신다. 헌금의 액수를 보고 횟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헌금을 한 과부의 두렙돈을 주님이 귀히 보신 것을 보아도 하나님은 헌금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의 믿음과 감사를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귀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서의 사람됨이 중요한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은 이사실을 간과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허무한 것이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아니 주신 것은 당장이라도 하나님이 빼앗아 가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내가 가진 것을 위해 또는 내가 하는 일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셨다. 주님은 전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니시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나 또는 봉사를 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나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주님이 죽으시기전에 하나님앞에 무어라고 말하였는지 들어보라.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저희를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하는 것이 전도라면 하나님아버지가 저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그아들을 사랑하심과 같이 같이 똑같이 사랑하신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주어 나를 바꾸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로 다할수 없는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고 급한 것은 그의 아들을 사랑하심과 같이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곧 그가 나를 그렇게도 기뻐하시고 사랑하셨다는 나자신의 존재에 대한 영적인 존엄성을 깨닫고 찾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에 빠진 나를 위해 구속의 은혜를 약속하시고 수천년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어 말씀을 주시고 기록하게 하시고 마지막 때에 그의 아들을 보내사 내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싸우시고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부활의 권세와 권능으로 나를 찾아 오시고 그리스도를 믿게하시는 은혜를 말씀으로 주심으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고 잃었던 생명을 다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셨다. 세상에서도 육신적으로 버림을 당한 불쌍한 죄인을 찾아오셔서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육신을 건져 주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직장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가정도 주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중에 가장 감격스러운 선물은 나같은 인격적인 불량품이 고침을 받은 것이었다. 하루이틀이 아니고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씻어주시는 거룩한 영의 역사로 거름더미같은 인격에서 주님을 닮은 성품과 인격으로 세밀하게 다듬어주시고 고쳐 주셨다. 이전에는 가족들에게도 동생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던 인격이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귀히여김을 받는 인격으로 변화되었다. 슬프고 답답하던 인생이 형통하고 기쁨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다.  

나에게는 교인을 늘리려고 전도할 이유가 없었다. 교회를 하기 위해서 전도하지도 않았고 교회를 크게하기 위해서도 전도할 이유도 없었다. 나같은 죄인을 건져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축복하시고 나를 변화시켜 주신 은혜가 고마워서 전도를 했다. 내평생에 감당할수 없는 그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전도를 했다.

전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머리가 큰아이와 같이 빤한 계산으로 전도를 한 것이 아니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예수를 자랑했다. 복을 받으려고 전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받은 복도 다 감당할수 없어서 그사랑을 전했다. 나같은 미물이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에게 그렇게 귀한 존재이었던 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격이 되어서 나도 나의 일생에 주님을 가장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 누구든지 사람을 대면하면 내입에서 예수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흘러나온 지가 벌써 삼십삼년이나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일이나 전도나 큰교회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뻐하신다. 이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이다.

전도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은 이렇게 나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신 나에게 주신 복음의 사람 곧 나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기뻐하심이며 전적인 소유가 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기뻐하시고 사랑하셨는가? 오히려 하나님을 찾으려할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멀어졌었는가를 생각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일 때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아직 이땅에 발을 딛지도 못했을 때부터 우리를 귀히여기시고 기뻐하심으로 그의 아들을 주어 우리죄를 대신하게 하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 eafj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4-1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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