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는 은혜를 도말한다.

은혜는 율법을 이긴다.

오늘날의 악한 영적인 현실은 너나할 것 없이 율법주의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교회도 강단도 기도도 찬송도 교리도 율법주의에 젖어 있다. 모든 말과 생각에 율법이 배어 나온다.

율법은 온전한 것이나 법있게 써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대로 쓰라고 준 율법이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영적인 진단방법이지 치료하는 것도 해결책도 아니다.

율법주의자들을 분별하는 길은 그들의 말에 행위의 결과를 빼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면 어떻게 되고 복을 받고 무엇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등등의 말투는 율법주의자들의 말투이다.

헌금을 하면 복을 받고봉사를 하면 복을 받고 전도를 해도 선교를 해도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행위에 복의 근원을 두고 있는양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속임수이다. 율법은 행하라고 주신 것이기 보다는 죄를 깨달으라고 준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로라고 주신 것이 율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에서 빗나간 사람들인 율법주의자들은 사람의 육체로부터 나오는 행위를 독려하고 행위를 칭찬하고 행위를 찬양한다. 이것이 다름아닌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너나할것없이 거의대부분의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젖어서 살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은혜가운데 사는 사람 곧 율법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젖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것조차도 스스로 할수 없고 주님이 해주셔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들의 말투는 '주님이 허락하시면 ...' '주님이 도와 주시면....' '성령이 역사하시면...'이라고 말을 한다. 내가 한다는 말이나 남에게 하라는 말을 할수가 없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죽은 것과 같이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주안에서 죽은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읽는 것도 주님이 역사해 주셔야 하고 깨닫는 것도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며 그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게 하시는 것이다. 전도를 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것도 믿게하시는 은혜가 임해야 하는 것이지 내결심과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행위의 주체를 우리의 몸으로보지만 은혜는 행위의 주체를 우리안에 계시는 성령님에게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안에 있는가 법아래 있는가를 분별하는 영적인 분명한 기준이다.
* eafj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2-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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