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방법을 몰라서 전도를 못하는가? 영혼사랑이 안돼서 전도를 못하는 거지."

어느 교단의 전도훈련집회 때에 어느 목사님의 입에서 퉁명스럽게 나온 말 한마디이다.
그렇다. 영혼사랑이 안되어서 전도를 못하는 것이지 전도방법을 모르거나 열심이 없거나 용기가 없어서 전도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영혼사랑이 없는 전도는 술수이지 전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전도방법과 기술이 난무하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전도세미나 전도강사 간증강사들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며 아직도 그와 같은 허상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 많던 전도강사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총동원 전도다 무슨 전도다 하여 그 많던 전도 프로그램들은 어찌 되었는가? 전도왕이니 뭐니 하여 몇 천명을 인도했다고 간증을 다니고 교회와 교인들을 포효하게 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느 교회에 갔을 때에 이전에 총동원 주일에 수천명을 전도했다고 전국적으로 간증을 다니던 간증강사가 룸싸롱을 경영하며 더러운 돈을 벌어서 사는 사람으로 전락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말씀을 듣고 괴로워서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몇 시간을 울었다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 사업을 청산하고 싶은데 돈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괴로워하며 울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 곧 인간의 방법이나 인간의 열심은 쉬 사라지는 이슬과 같이 없어지는 것들이다. 눈이 멀고 잘못된 교회는 교인들에게 육체의 열심을 요구한다. 그 육체의 욕심이 한 영혼을 이렇게 망치고 병들게 할 뿐 아니라 그의 손에 이끌려왔던 수많은 영혼들을 건지지도 못하고 실망을 시키고 교회를 떠나가게 만드는 일을 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것은 영혼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욕심인 것이다. 교회를 크게 하고 교인들을 많게 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교회 안에서 역사한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서지도 못한 사람들을 전도의 도구로 내어 몰아 타락시키는 일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는 곳이지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곳이 아니다.
주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게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기 집도 전토도 자기의 소유도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주의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주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이루려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그 더러운 야망을 이루기 위해 교인들을 이용하고 교인들에게 행위로서 헌금을 강조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벌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증인은 보여주는 사람이요 아들을 보여주는 증인이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인 것이다.
이렇게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 사랑을 이루는 것이 전도라는 데에는 별반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영혼을 사랑하겠는가? 교회 안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 밖의 영혼을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영혼사랑을 하고 싶어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곧 영혼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사랑이 없는 행위로서의 전도와 술수로서의 전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영혼사랑은 힘쓰고 애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영혼사랑은 배우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주는 것도 아니며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사랑이 점점 자라가고 커지는 것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이 비밀을 알고 체험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우리는 교회 밖의 영혼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교회 안의 영혼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안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형제를 거짓이 없이 사랑하는 비밀이 자기의 영혼을 먼저 깨끗이 하는 것이며 자기의 영혼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진리에 순종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영혼을 정결케 하고 거룩함 가운데 거하는 사람만이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렇게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의 영혼도 귀한 줄 알아서 형제의 영혼을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 안에 성도들을 사랑하는 척하지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는 일들이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옛날에 속회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연약한 집사님이 목사님을 집으로 초청해서 예배를 드렸다. 그 집사님은 목사님이 자기의 영혼과 형편과 처지에는 무관심하고 형식적으로 심방하는 것을 겪고 나서 속회 식구들 앞에 "우리 목사님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 내가 알아요."라고 통곡하며 울었다. 교회 안에서도 거짓사랑이 있다. 가정에서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전도를 나가면서도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전도를 하는 일도 많이 있다. 단지 교인수를 늘리기 위해서, 교회를 크게 하고자 하는 욕심으로부터 전도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래 전에 전도할 때에 불신자들이 등 뒤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저 사람들 전도지가지고 전도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전도를 많이 하면 교회에서 상으로 냉장고도 주고 텔레비전도 준대." 마음이 아파 찢어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영혼사랑의 전도를 이렇게 더러운 욕심으로 전도하는 것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분노가 내 안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아나 무지한 사람도 자기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말과 행위가 진실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를 안다. 어찌 보면 불신자들 중에 복음을 신경질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영혼사랑이 의심이 되기 때문인 경우도 적지 않게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말씀 이전에 하나님의 뜻은 먼저 그의 자녀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얼마나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하나님처럼 거룩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닮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오늘 하루도 하나님처럼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처럼 말하지 못한 자책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사랑하지 못한 자기의 영혼을 아파하고 하나님처럼 용서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한 자기의 영혼을 안타까워할 줄 알고 그것 때문에 부르짖고 통회자복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거룩함을 아는 사람이다. 거룩한 사람은 곧 자기의 영혼을 깨끗케 하는 사람이요 자기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만이 자기 영혼을 위할 줄 알고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주의 뜻을 행하는 사람인 것은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셔서 지금도 나의 영혼을 더럽힌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아파하게 하시는 회개의 영으로 역사하시며, 그 죄를 씻으신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믿음으로 정결케 되는 일을 날마다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영혼이 깨끗함을 받아 거룩하게 될 때에라만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고 거룩히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죄가운데 있는 영혼을 아파하고 안타까움으로 사랑할 수 있는 영혼사랑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전도할 때에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주님 앞에 설 때에 계산할 것이 없고 교회 안에서 목사님에게 사람들에게 믿음이 좋다는 칭송만 듣고  살았던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고 소용없는 것인가를 처절하게 깨닫고 그냥 하나님 앞에서 계산할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도를 했다. 물론 그때까지 내 영혼을 사랑하는 경건생활을 통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삶이 5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씀을 전할 때면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울고 회개하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기의 영혼을 깨끗케 하는 일들은 이미 경험했던 터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교회 안에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말씀으로 정결케 하는 사랑만큼은 뜨거웠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떳떳치 못하고 아픔을 가졌던 것은 밖에 나가서 전도를 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간단없이 내 안에서 들려오는 성령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어서 마음을 태워왔던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년 남짓 내가 가르쳤던 청년들을 데리고 주일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병원전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도 자기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은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전도를 나가면서 나타나는 현상 중에 어떤 때는 주님이 쓰시고 어떤 때는 주님이 안 쓰시는 것을 보았다. 또 같이 전도를 나가도 누구는 주님이 쓰시고 누구는 주님이 안 쓰셨다. 이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주님의 일이다.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전도를 나가서 귀한 시간만을 허비하고 돌아와야 되는 안타까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도회 때에 또는 전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하는 보고회 때에 자기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토해내고 고백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전도를 못하고 열매가 맺혀지지 않고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지도 못하고 받게 하지도 못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감화시키지도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이 자기의 영혼을 더럽힌 죄 때문임을 알기 시작하면서 공개적으로 자기의 무능함과 자기의 영혼의 더러움을 아파하고 회개하며 자복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예수를 믿기 전의 죄보다도 어제 오늘의 죄가 자기 영혼을 더럽히고 심각히 병들게 함으로 주님이 자신을 쓰시기에 불편하셨던 것 때문에 아파하며 통회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전도가 하도 안되고 불신자들이 완악하기만 해서 너무나 안타까워 전도 중에 부끄러운 줄은 알지만 자기의 영적인 형편이 너무나 비참하기에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회개기도를 하였단다. 그랬더니 일어나자마자 준비된 영혼을 붙여주셔서 순적하게 열매를 맺었다는 간증을 하기도 했다. 이 간증을 통해서 전도자들의 마음 속에 거룩함을 사모하고 자기의 영혼을 깨끗케 함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불타올랐다. 전도를 나가기 전 기도회 시간에는 회개와 죄를 자복함으로 시작해서 죄를 자복함으로 끝나는 일들이 일어났다. 점점 더 세밀한 죄들이 토해지고 씻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거룩함 가운데 가까이 가는 일들이 일어났다. 죄를 씻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한 주간 동안 살면서 자기 영혼을 죄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의 도우심을 애타게 찾고 구하는 일들이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의 죄를 아파하며 자복할 때에 그것이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아픔으로 심령마다 전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아픔이 아니요 생소한 아픔도 아니요 나의 주님의 아픔이요 곧 나의 아픔인 것으로 깨달아지면서 온 회중이 같은 통증을 느끼며 아파하고 통곡하고 우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자기의 영혼 때문에 울고 죄로 자기의 영혼을 더럽힌 것이 안타까워서 울었는데 이제는 같이 전도를 하는 형제들의 죄를 다같이 아파함으로 울고 통곡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그것이 형제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동일한 죄를 가지고 흑암 가운데 사는 영혼들의 형편이 조금씩 알아지고 그 영혼들이 불쌍해지고 그 영혼이 불쌍해 눈물이 흐르다가 나중에는 아파서 견딜 수 없는 영혼사랑에 사로잡히는 일들이 일어났다.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죄인들의 죄를 아파하신 그 아픔이 영혼사랑의 아픔이요 그것이 거룩함의 아픔이요 그 아픔이 하나라는 것을 체득하고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옛날에 체험한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오늘 내가 내 영혼을 더럽힌 죄를 씻으므로 체험한 지금 십자가의 복음이 전도현장에서 힘있게 증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룩해질수록 십자가의 사랑에 가까이 갈수록 구원받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는 영혼들이 아파서 그 영혼들을 사랑함에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우는 일들이 일어났다. 길을 가다가도 울고 일하다가도 울었다. 퇴근을 하다가 버스에 있는 영혼들이 불쌍해서 그 영혼을 사랑함으로 버스를 네 번 다섯 번 갈아타면서 복음을 전했다. 내가 만난 택시기사마다 복음을 전했다. 그 영혼이 불쌍해서 전도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자 반응이 즉각즉각 나타났다. 택시기사가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영접하고 몇 마디의 말에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들의 구주의 사랑에 감동되어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쉽게 체험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거룩함과 영혼사랑을 모른 채 예배만 드리는 교인들과 교회가 불쌍해서 울기 시작했다. 거룩함을 상실하다 못해 불신자들의 도덕수준 아래로까지 떨어져서 만나는 불신자마다 교회를 욕할 정도로 본분을 상실한 교회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요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영혼의 거룩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그것은 날마다 자기의 영혼을 깨끗케 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냥 교회만 다니는 교인들을 상대로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만을 드리고 식물인간과 같이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와 방불한 교회를 아파하기 시작하면서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케 하고 거룩하게 하시며 교회를 정결케 하는 이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 목회자 세미나와 제직훈련 등등 여러 훈련들을 통해 이 땅의 교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지난 27년 동안 해오신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들이 거룩함을 회복하고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음으로 주께서 구원받는 자의 수를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역사가 우리의 눈에 언제나 목격되어질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지금도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날마다 순간순간 주님을 의지해서 자기의 영혼을 정결케 하는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 아픔이 이 기도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  


* eafj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7-0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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