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자녀는 부모가 마련한 식탁에 앉아서 영양이 있는 식사를 제공받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식탁이 없습니다.

그냥 오다 가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것이 거지의 생활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 거지같은 성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다 가다 교회에 들려서 설교를 듣는 것이 유일하게 영혼의 양식을 먹는 시간이 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영적인 기근의 시대라 교회의 강단에서조차 먹을 것이 메마른 현실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 영혼이 누렇게 떠버린  사람들이 교회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신은 강건할지 몰라도 그 영혼은 파리하고 창백하며 움직일 힘조차 없고 어쩌면 죽어가는듯이 영적인 기력이 쇠하고 진하여 아무런 영적인 움직임을 가질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은 물론 살수 없으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맺는 생활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고

애꿎게 교회만 왔다 갔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뿐 아니라 교인들의 관심의 대상조차도 되지 못합니다.

또 교회에서 목사나 교인들의 관심을 받는다 할지라도 다분히 육신적인 이유 때문이지 영혼때문에 사랑받고 사랑하는 관계는 아닌 것입니다.


가정도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없으면 가정이라고 할수 없는 것처럼

교회안에서 내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도들의 사랑도 못받으며

또 어느 누구하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줄 영혼도 없다면 그것은 교회라고도 할수 없으며 

그렇게 사는 것은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도 그렇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안에서 조차도 세상살이를 해야 하는 비참한 일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혼의 식탁이 있는 생활입니다.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주님이 차려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먹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를 위한 영혼의 식사시간을 정하지 않으면 주님이 나에게 영혼의 양식을 먹여 주실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빼앗을수 없는 시간 아무도 방해할수 없는 장소에서 하루중에 가장 좋은 시간을 주님께 드려야 주님이 베푸시는 풍성한 식탁을 마주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시간을 정하는 것보다 먼저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마음을 정하는 것을 성경은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지 않으면 오다 가다 먹는 영적인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다 가다 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요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살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 사람에게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시 107: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시 107: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시 107:12)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교회안에는 은혜를 사모하지 않음으로 오다 가다 먹는 것조차 안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밥을 오래 안먹으면 식물에 대한 거부감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도 다이어트를 잘못해서 거식증(拒食症) 곧 음식을 거부하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칫 자기의 생명도 위협하게 됩니다.

교회안에는 영적인 거식증에 걸려서 도무지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못하고 말씀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적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불쌍하지만 오다가다 먹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못먹는 형편되는 대로 먹고 사는 사람도 불쌍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같이 날마다 영혼의 일용할 양식을 받아 먹는 주님이 베푸시는 영혼의 식탁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영혼이 살찌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54.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