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전에

 

지금으로부터 1925년전인 95년에 요한은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계시받는다. 제일 먼저 주님은 일곱교회를 책망하시고 칭찬하시는 일을 통해서 그 때당시의 교회의 현실을 밝히 일러 주신다. 특별히 주님은 요한에게 에베소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사도는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이다. 그 뜻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사도는 주님이 보내신 자를 말한다. 여기서 자칭사도라는 것은 주님의 보내시지 않은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주님이 사도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를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이거나 사람에게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사도로 인정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자칭 사도이든 타칭 사도이든지 주님이 보내시지 않은 사람들은 다 자칭 사도들이다.

구약시대부터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내시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그들의 예언을 받아들인 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며 죽임을 당해도 장사할 자가 없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14: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4: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치시겠다고도 하셨다.

 

(23: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3: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23: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23: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23: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3:27)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3:2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23: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23: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하나님은 모세의 신명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말씀을 방자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하는 자들과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리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요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18:20)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18:21)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부어 주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곧 신약교회인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우상의 이름을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거짓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떠나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13: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일찍이 거짓선지자들을 삼갈 것을 가르치시면서 거짓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하셨다.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아보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다 찍혀 불에 던지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런 사람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마지막 날에 자기들이 선지자노릇을 한 것과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말하겠지만 주님은 그런 자들에게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밝히 말씀하시겠다고 하셨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또한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조상적부터 계속 있어 온 일이다.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말한다.

 

(고후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거짓사도는 프슈다폴로스토스”(ψευδαπόστολος)이다. 궤휼의 역꾼은 에르가테스 돌리오스”(ἐργάτης δόλιος)인데 에르가테스는 일꾼”, “노동자를 말하며 돌리오스속이는” “사기 치는이라는 뜻이다. 곧 속이고 사기 치는 일꾼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에서 가장하는 자들메타스케마티조”(μετασχηματίζω)인데 외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곧 겉모양만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짜 사도들이요 사기치는 일꾼들이며 겉모양만 사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바울은 교회안에 이런 사람들이 들어오고자 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듯이 사단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며 그들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보응을 받게 될 것을 말했다.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단의 일꾼이 누구이며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런 자들은 말만하고 행하는 것이 없으며 능력도 없는 교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고전 4:19)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난 사실과 거짓선생들이 교회안에 있는 사실을 말하면서 그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교회 안에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함으로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오늘날도 현실적으로 처처에 거짓 사도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정통교단에 속한 것과는 다른 문제이며 명문신학을 나온 것과도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교단조직의 건전성이나 공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성립이 되고 시작이 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주님이 그 사람을 주의 일꾼으로 세우신 적이 있는가? 곧 예레미야의 말과 같이 주님이 경성함으로 마음(레브)과 정신(네페쉬;영혼)을 다하여 주안에 거하도록 심어 주셨는가?

 

(31:28)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2: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그리고 주님이 그 사람을 누구에게 보내신 증거가 있는 사람인가? 그 증거는 물론 열매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열매가 없는 사람은 주의 일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의 부르심이 없는 사람 곧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사도가 될 수 없다. 제자들과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를 따라감으로 일꾼으로 세우심의 과정이 없는 사람도 주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될 수 없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를 택하여는 부르심이다. “세웠나니는 세우심이다. “가서는 보내심이다. 그러므로 주의 사도는 주님이 택하시고 세우셔서 보내심을 받아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항상 있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다 받아서 사는 기도의 사람이다. 주의 제자들 열둘이 다 택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가룟유다는 주님의 택하심에서 제외된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과 모든 것을 같이하였지만 결국은 주의 길이 아니라 제 곳으로 간 사람이 되었다.

 

(1: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그리고 시편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대로 그의 거처로 황폐케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시고 직분은 다른 사람이 취하게 되었다고 성경에서 사도들은 말한다.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69:25)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109:8) 그 연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유다는 택하심을 받은 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주를 따르면서 사도로 세움을 입는 모든 과정을 그는 상관이 없이 시간만 보낸 자가 되었으며 결국 그는 보내심을 받지 못한 자가 된 것이다.

주의 제자들을 보면 먼저 주님은 그들을 한사람씩 일일이 불러주셨다. 주님의 부르심은 두 사람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주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살았다. 주님을 따르는 생활이 곧 주님이 일꾼을 세우시는 42개월의 과정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당당히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10: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유다의 궐을 채우기 위하여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천거하여 제비를 뽑는다. 그 두 사람을 천거하는 조건이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이었다.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1: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1: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1: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1:26)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을 어떠한 사람으로 세워 놓으셨는지 세우심의 내용을 알수 있다.

그들은 주를 따르는 생활을 살면서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아서 주안에 거하게 된 자들이다.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주안에 거함의 결과로 열매를 많이 맺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는 자들이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7절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주안에 거함의 결과로 주의 말씀이 그의 안에 거하여 무엇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받는 말씀의 사람이며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심과 같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주안에 거하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주님의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주의 친구가 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주님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하신 사람이다.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이렇게 그들이 주님의 세우심을 온전히 받았을 때 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시는 것이다. 주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날 저녁때에 마가의 다락방에 찾아오신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주님이 누구 한사람을 보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은 중차대(重且大)한 일이다. 중차대(重且大)라는 말은 무겁고 또 큰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주님의 일꾼을 감히 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듯이 일꾼을 보내실 분은 오직 주님 한분밖에 없는 것이다.

신학교에서 일꾼을 부르고 세워서 보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교회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교단이나 어떤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것들은 주님이 보실 때에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일꾼은 주님만 부르시고 주님만이 세우시며 주님만이 보내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누가 목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주님앞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남이 따져 보기 전에 먼저 자기자신이 따져보아야 한다. 신학교 교수도 주님에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인지 따져보고 확증해야 한다. 또한 주의 제자들과 같이 주님에게 개인적으로 세우심을 받는 시간과 과정이 있었는지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그런 시간과 과정이 없는 사람은 주님의 세우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믿음은 고사하고 정신세계마저도 빈약한 종교적인 건달에 불과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말세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겠다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계의 말을 했다.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6)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딤후 3: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 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딤후 3:9) 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

 

그리고 다음으로 주님이 보내신 증거가 있는 사람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분별할 수 있다. 그것은 열매를 보아서 분별하는 것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있어야 주님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주님에게 보내심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칭 사도일 뿐이다. 사람에 의하여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된 사람은 타칭 사도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날 신학교에 또 교회에 이와같은 가짜들이 범람을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성경도 모르고 목사가 되고 성경도 모르면서 설교를 하고 또 신학만 공부하고 성경에는 무지한 신학자들도 그 수를 셀수 없이 많이 있다. 목사가 전도를 못하면 그것은 분명한 가짜이다. 신학교수도 전도를 못한다면 분명한 가짜이다. 목사도 신학자도  주님이 이땅에서 친히 하셨던 전도를 못하고 예수의 증인이 된 생활과 전도의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가짜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사도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가? 사도행전 성도들 중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런 잘못된 사람들은 어제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기교부시대부터 지금까지 1900년동안 있어 교회안에 바글대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배가 산으로 가듯이 교회가 이상한데로 가는 일을 반복해서 한 것이 지나간  교회사에 다 기록되지 아니하였는가? 그리고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이미 다 기록된대로 이루어 진 것들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에베소교회는 자칭 사도라고 하지만 거짓된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됨을 드러내는 일을 단호하게 행했다. 그것은 주님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에베소교회는 주님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을 시험해서 가려낼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교회이었다. 그들은 자칭 사도라하는 자들 가운데 아닌 자들을 잘 골라내어서 그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교회 밖으로 쫓아내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영적으로 건강한 교회는 이런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오늘날도 교회안에 그 때의 에베소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자칭 또는 타칭 목사라고 하는 자들을 테스트해서 그들이 아닌 것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궤휼의 역꾼들 곧 가짜 사역자들의 거짓됨을 밝혀서 교회에 용납지 않고 쫓아내는 일을 확실히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1925년전에 에베소교회의 성도들과 같은 믿음이 참으로 아쉽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현실이다. 지금 이렇게 진실한 영적인 사람들이 교회안에 찾아 보기 힘들다는 것은 오늘날의 교회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서 주님의 교회를 바로 잡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이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간절한 뜻이기 때문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154.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