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에서 집회가 끝나고 그교회 사모님이 이런말을 내게 들려 주었다.

"장로님 어느 여대생아이가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저에게 와서 말하기를 '사모님 장로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모든 죄가 다 용서를 받는다는데요 이러이러한 죄도 용서를 받을수 있는거예요?' 라고 하길래 제가 대답을 해주기를요 '야 네가 다시는 그런죄를 안지어야 주님도 용서를 해주시지 또 다시 그런죄를 진다면 주님이 어떻게 용서를 해주시겠니?' 라고 제가 말을 해주었습니다."

"예 그래요?"라고만 대답을 하고 참으로 어이가 없는 대답을 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더해가기만 한다. 세상에 그런 말씀도 논리도 성경에도 없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수가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이다. 그것도 말씀을 듣고 회개의 영이 임해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용서하심의 확신을 얻고자 찾아온 그영혼에게 말한마디에 좌절을 안겨주는 율법의 말을 하였다하니 참으로 안타까운일이 아닐수가 없다.

그사모님은 어느기도원에서 세미나를 한다는 목사님,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고 가르친다는 그목사님, 그분은 걸핏하면 지옥간다는 말을 한다는 분인데 그분을 오래동안 따라다닌 분이라고 했다.

언제든지 은혜가 임하기전에는 율법의 극한상황이 있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나 교회사를 통해서 볼수가 있다. 주님이 오시기전에도 바리새인들의 율법이 온백성을 묶어 놓고 있었으며 그들은 죄를 어떻게 해결을 해야할지를 모르고 유리방황하는 가운데 있었다. 지금도 이 나라가 살리는 말씀이 아니라 심령으로 정죄의식과 죄책에 빠지게 하고 심판의 두려움을 안기어주는 율법적인 설교가 강단을 장악하고 있다. 도덕적인 의무감을 강조하는 설교, 교인들에게 이행위 저행위를 요구하는 설교, 주일성수를 안하면 지옥간다는 말에서부터 시작해서 십일조를 안하면 지옥간다는 말들과 건축헌금을 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부터 감사헌금이나 봉사를 해야 복을 받는다는 행위로 인한 축복과 행위로 인한 형벌을 강조함이 그극에 달하고 있음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바이다.

본시 실력이 없는 의사나 고치지 못하는 의사는 환자의 병을 중하게 말함으로 보호자에게 겁을 준다. 그래서 고쳐지면 자기 실력이 좋은 것으로 드러날 것이고 못고치면 환자의 병이 중하기 때문이라는 핑게를 댈수 있어서일것이다.
고치지 못하는 영혼의 목자들은 교인들에게 여러가지 행위를 요구함으로 자기들도 행치 못하는 짐을 잔뜩 지워 놓고는 양떼들로 겁을 먹게 하여 자기들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이 율법주의자들의 생태인 것이다.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 11:46)

성경은 말하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우리가 받은 것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다. 혹 우리가 잘못 행하고 죄를 지었어도 주님의 사랑안에서 근신하고 괴로워 하고 아파할지언정 우리는 두려움의 종노릇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부르심을 받고 죄책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누가 죄를 지었어도 행위가 모자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를 믿는 믿음에 손상이 온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원수마귀가 원하고 기뻐하는 것이며 그것은 주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의 일함의 결과인 것이다.

마귀는 누구인가?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 12:10)

마귀는 율법으로 성도를 속이고 정죄의식에 빠지게 하고 죄책감으로 살게 함으로 궁극적으로는 심판의 두려움속에 몰아 넣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안에 많은 율법선생들이 부지불식간에 마귀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교인들을 바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할것같은 두려움속에 몰아 넣는 것이 저들의 수법이요 저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행하지 않으면 버림받을 것같은 두려움에 빠지게 함으로 저들 마음대로 교인들을 좌지우지하려하는 저의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열심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저희를 향하여 곧 인간을 향하여 열심을 내게 하고 주님의 뜻으로 포장된 자기의 욕심과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저희로 율법을 가지고 교인들을 얽어매는 것이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갈 4:17)
            
왜 이와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벌어지고있는가? 그것은 은혜를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 율법의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 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이르면 그은혜로 주님을 위해 헌신도 하고 말씀에 순종도 하며 이것도 저것도 할수 있는 것이다. 은혜가 없는 회개의 형태만을 가진 것 죄의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용서받은 기쁨과 확신으로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두려움가운데 빠지는 것이 율법주의의 페혜인 것이다.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회개의 모양만을 가진 것이 율법주의자들이 노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라 세상근심에 이르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죄를 회개하고 사함받은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순종도 하고 말씀대로 살기도 하고 헌신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헌금도 하는 것이지 망할까봐 두려워서 저주를 받을까 무섭고 벌받을까 무서워서 이것도 저것도 행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율법의 무지에서 벗어날 때이다. 두려움을 주는 율법의 선생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잘못된 가르침에서 벗어나야한다.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회개하고 용서받는 십자가의 은혜가 갈급하고도 목마르게 기다려질 때가 온 것이다. 십자가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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