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전조--거룩함을 세밀하게 다루시는 하나님

엊그제 부산에 갔을 때에 공항에 마중을 나온 소양보육원 지형식장로님이 차를 타고 가면서 말을 했다. “장로님 APEC 기간동안에 차량이부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차는 면제차량입니다. 오늘은 홀수차량이 운행을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차는 운행을 합니다. 저 비표때문이지요.” 그러고서는 비표를 받으러 구청에 갔을 때에 아버님 장로님의 비표를 하나 더 받을까 하여 미국 영부인이 보육원에 오는데 의전차량을 구실로 공무원에게 말을 보태서 비표를 하나 더 받아서 아버님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았단다. 그런데 주님이 그날밤에 즉각적으로 책망을 하시는데 거짓말한죄로 성령께서 근심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님께 가서 사실을 말씀을 드렸더니 즉시 ‘그러면 내가 그차를 타서는 안되지.’하시고 아직 붙이지 않은 비표를 내어 주셨다 한다. 그리고 교회앞에 자신의 부정직함을 자복하고 주님이 회중에 은혜를 주셨으며 그공무원을 찾아가서 “내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인데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다가 거짓말을 하고 우겨서 비표를 받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을 하니 그공무원도 숙연해지더니 “이걸 어떻게 하나”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장로님 이제는 너무 사소한 죄라도 주님이 근심하심을 깨닫고 체험합니다.”

이제는 거룩한 부흥이 성큼 가까이 온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밀하게 다루시는 역사가 사람마다 나타나고 있다.

지난 시월에 광주에서 집회를 할 때에 녹두를 고물로 한 맛있는 떡을 먹으면서 교제를 할 때에 어느 목사님이 “장로님 이것이 녹두가 아니라 팥입니다.” “아니 노목사님이 녹두라고 하던데요” “예 녹두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동부예요.” 나는 의아해 하면서도 워낙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니 이내 수그러 들었다. “아그래요” 그리고 지나갔다.
언젠가 우리집에서 게장을 목사님들과 먹은적이 있었는데 그다음날 대전에 있는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로님 어저께 게장을 잘 먹었습니다.” “정말요” “예 정말입니다.” “충청도 양반들은 인사치례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실하지 않으면 성령님이 근심해요.” “아니예요 진심이예요 정말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또 목사님들과 교제를 하던중 낙지가 몸에 좋고 기운을 차리는데에 좋다는 말들이 나왔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어느 목사님이 “낙지가 얼마나 좋은지 기운이 빠져 쓰러져 있는 소에게 낙지를 한 마리 먹이면 누웠던 소가 벌떡 일어납니다.” “정말요?” “예 정말이예요 옛날에 동네 어른들이 소가 쓰러져 있을 때에 낙지를 막대기에 말아서 먹이면 소가 벌떡 일어납니다.” “봤어요?” “예 봤습니다.” “정말이예요?” “예 정말입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사간이 지났을까. 대전에 있는 목사님이 내게 가까이 와서 장로님 사실 그날 전화를 하고 성령님이 근심을 하셔서 죄가 죄를 자백합니다. “사실은 어느 목사님이 전화를 해서 장로님에게 잘먹었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인사차 전화를 했는데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냐고 장로님이 물으실 때에 제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것 때문에 주님이 기도할 때도 책망을 하시고 해서 제가 그냥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안에서 집회를 할 때에 낙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목사님에게 새벽기도때에 주님이 만나주시는 역사가 일어났다. “너는 보지 못하고 들은 것을 가지고 보았다고 거짓말을 하느냐?” 는 주님의 음성에 회개의 영이 임하면서 그죄가 아파서 통회자복하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나에게 달려와서 “장로님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보지는 못하고 듣기만 하였는데 보았다고 말한 것 때문에 성령님이 금심을 하십니다. 제가 과장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날 낮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녹두를 동부라고 고집을 하셨던 목사님도 나에게 “장로님 제가 이전에 동부라고 우겼던 것이 장로님 말대로 녹두였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성령님이 근심하시고 책망을 하셔서 제가 죄를 자백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이제는 거룩한 부흥이 가까이 온 것을 심령마다 느끼고 체험을 하고 있음을 본다. 왜냐하면 주님이 지극하신 거룩함으로 아주 작고 사소한 우리가 보기에는 티끌같은 죄들을 아파하는 거룩함을 심령속에 부어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거룩함으로 가까이 갈 때마다 더 작고 세미한 죄들이 깨달아지고 그죄가 아파지고 아파서 견딜수 없는 거룩한 마음을 주님이 주시는 것이 부흥이기 때문이다. 1907년 부흥이 왔을 때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임하고 어떤이는 오래전에 옆집 마당에 굴러다니는 몽두이 하나를 주워다가 그것을 깍아서 곡괭이 자루로 만들어 썼는데 그것을 성령님이 책망을 하셔서 애통함으로 울고 그것을 빼어서 갖다 주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세밀한 거룩함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부흥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영적으로 장악이 되지 않고 교인들이 세상의 강력한 영향력아래서 살고 죄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을이 숨길수 없이 드러남으로 교회가 그것을 아파하기 시작하는 것도 부흥의 전조증상의 하나로 볼수 있으며 교인들자체가 영적인 빈곤과 목마름과 갈급함에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도 우리는 부흥이 가까이오는 증거로 볼수 있다. 또한 세상죄인들이 갈때까지 다간 죄악상이 이시대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거룩한 부흥이 가까이 온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1907년의 부흥을 이벤트로 이용하려는 비류들에게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 부흥이다. 저들의 생각하는 부흥은 오지 않는다. 일백주년을 기념이나 하면서 ‘부흥이여 어서 오라’고 부르짖는 이들에게는 죄를 아파하고 버리는 거룩한 부흥은 저들이 말하는 부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생활속에서 골방에서 자기의 죄를 아파하는 은헤가 주님께로부터 임해야 한다. 주님이 아니주시면 받을수 없는 것이 은혜요 주님이 아니주시면 받을수 없는 것이 부흥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성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막바지의 역사를 기다리며 타락한 전세게의 교회가 진리를 상실한 전세계의 교회가 떠나고 상실했던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돌아와서 죄를 아파하고 애통해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부흥은 오는 것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슥 12:10-14)

각자각자가 따로따로 죄를 아파하고 애통하는 일들 곧 각각 자기의 죄를을 스스로 아파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부흥이다. 이제는 스스로의 행위를 각사람이 아파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이땅에서...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 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1-38)
          
주여 이부흥을 우리에게 속히 허락하시옵소서. 아멘 아멘
(*.198.3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