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맹아원장

얼마전에 목사님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데 고병훈집사가 농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농구를 하는 중에 패스해주는 공을 받다가 공에 맞으면서 아이쿠 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눈이 잘 안보여요"

오랜 지병인 당뇨로 인해 시력장애가 와서 일차 수술을 받았는데도 시원치 않았다. 그러던중 안경사를 소개를 해주었는데 그는 안과병원에서 근무를 했었고 안경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밟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소개로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안과를 소개받아 강남의 어느병원에 갔었는데 진료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르고 확신이 있는 의사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노라고 이제는 눈을 고칠수 있을것같다고 즐거워하던 일이 엊그제의 일이었다. 지금도 고집사의 시력의 빠른 회복을 위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더더욱이 그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받으신분이라면 더 간절한 기도를 부탁을 드린다.

눈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다 표현할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시력을 상실하면 그건강한 몸을 쓸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안질환으로 인해 한쪽눈에 안대를 하기만 해도 거리측정이나 속도측정에 문제가 생기고 즉시 불편해지는 것을 우리는 거의다 경험을 했을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뇌종양수술을 받으면서 시신경이 두개가 손상이 되었는데 그로인해 한쪽 눈이 상이 겹쳐보이는 것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멀쩡한 사람이 말만 못해도 듣기를 못하기만 해도 보는 것이 불편해도 불구자 취급을 받고 멀쩡한데도 바보취급을 받는것이 아닌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신체의 일부가 못쓰게 되면 당장 불구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오래전에 미국에서 만난 어는 외과의사부부가 있었는데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그부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를 낳았는데 미숙아여서 의사들의 말이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가까운 어느교회에 연락을 해서 같이 기도를 했는데 기적과 같이 주님이 살려주시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지나서 아이가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것같다는 연락이 왔다. 함께 기도하면서 그부모의 안타까움과 눈물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아버지 집사님의 주님의 뜻을 구하는 의연한 믿음과 그리고 그문제가 해결되는 주님의 도우심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신체의 일부만 연약해도 그것이 온가정의 고통이 되고 슬픔이 되며 또 그것이 해결될 때에 얼마나 큰기쁨을 주는지를 지켜보았다.

이땅에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태어났는데 여러가지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지를 나는 보았다. 십년전쯤에 목동에서 집회를 할 때에 어떤이는 집회가 끝난시간에 늦은시간이지만 일산의 자기집을 가자고 해서 갔는데 아이가 방에 누워 있었다. 얼굴이 얼마나 큰지 이제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어떤이는 아이들의 소아마비로 어떤이는 말을 못하는 것 때문에 어떤이는 희귀병이나 자폐증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아이들의 부모의 고통은 어려서부터 볼수 있었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날때는 멀쩡했는데 중도에 병으로 사고로 실명을 할 때에 고통하는 부모의 아픔도 알고 있다. 부모의 고통은 아니더래도 가장이나 또는 노부모가 노환으로 실명을 할 때에 온가정의 생활에 충격을 주는 것도 보았다. 멀리갈 것없이 저의 빙모께서도 얼마전에 시력장애로 일순간이나마 고생을 하신적이 있어 자녀들이 바짝 긴장을 한적도 있었다.

어느 누구를 막론 하고 빈부나 귀천이나 노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가까운 식구나 자녀중에 시력의 장애가 올때에 그것을 나몰라라 하는 사람은 이세상에 단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장애가 왔을 때에 백방으로 치료책과 해결책을 구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이 인간지 상사라 할수 있을 것이다.

불교를 배경으로한 소설이지만 심청의 경우에 눈이 멀은 자기 아버지를 위해 자기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갸륵하고 간절한 마음은 소설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소경됨을 즐기고 그것을 적당히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화 있을진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9-16)

이말씀은 이사야의 예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은휘되고 사람의 말과 계명, 사람의 교훈으로 백성들을 가르침으로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그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영적인 소경들을 하나님의 교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안타까움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곧 토기가 토기장이를 자기와같이 여기고 지음받은 물건이 지은자를 멸시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총명을짓밟는 일인 것이다.

사람의 말로써 교인들의 눈을 멀게하고 축복을 준다하고 속여 헌금을 강조하는 것이나  예배당건축이나 교회의 운영, 선교면 선교, 교회의 여러가지 프로그램과 일을 추진하는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이나 그의 경륜,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은 배제되고 인간의 열심이 강요되고 행위가 강조되며 인간적인 목표가 강조되는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인간의 방법과 계교로 교회를 이끌고 교인들을 회유하여 주님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르게 하는 일들이 지금 교회안에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이일을 하면서 개인적이고도 조직을 위한 이기심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망쳐 놓는지를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그것이 교회조직이나 선교조직이라할지라도 거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의욕 사람이 자기마음대로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방법들을 보았다. 그런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인것처럼 강단에서 말하여지는 것을 보아 왔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을 건축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시험들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도 보았다. 정욕적인 선교욕심이 어떻게 선교지를 망치고 인간적인 술수로 선교를 이용해서 선교비를 받아내려는 가슴아픈 모습도 보아왔다. 선교지를 놓고 싸우다 못해 비방하고 상대를 매장시키는 일도 보아왔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 2:21)

그런데 이와같은 일을 만들고 꾸미고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종들인데에 그아픔이 있는 것이다.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사 42:19-22)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며 영적으로 성장을 하는 곳이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은혜를 받으면 그래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는 곳이다. 만에 하나 사람때문에 헌금을 일푼이라도 하고 봉사를 하고 교회일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며 교인들로 헛된일에 빠지게 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으로 교인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수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예수전도협회에 와서 울부짖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와같은 인간의 간계로 말미암는 마귀의 속임수에 속아서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고 주의 일을 했던 것이 억울하고 원통해서 통회하고 자복한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앞에서가 아니라 사람앞에서 요구되는 의를 힘써 행한 것이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때문에 억울해서 부르짖고 울고 회개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의 열심과 욕심에 이끌려 여러가지 말과 사람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억울해서 울지 않았는가 생각하여 보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값비싼 댓가를 치루시며까지 구원해주신 고귀한 생명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을 내몸에 모시고도 이전과같이 사람의 종이되고 주님이 주신 자유를 값도 받지 못하고 팔아버린 것이 원통해서 울고불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또 수많은 주의 종들이 하나님이 그의 피로 값주고 사신 그의 자녀들을 내 사유물처럼 여기고 그영혼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아파하며 울었던 기억이 어디로 갔는가?

일전에 간사출신인 어느 목사님이 전화를 해서 "예수전도협회에 가서 눈을 뜬 교인들때문에 목회하기가 힘들다"고 불평을 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예수전도협회는 영적인 눈을 띄어주는 일을 하는 곳이지 다른 곳이 아니라는 설명을 하였다. 그래도 말을 알아듣는지 못하는지 "장로님도 윤아무개목사처럼 목사에게 잘하라고 해야지 목사님들이 교인들을 많이 보내지 참 예수전도협회가 안타깝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목사님이 일주일후에 몇몇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모였는데 거기서도 그와같은 말들이 많이 나왔다고 전해주었다.

"장로님 말씀을 들으면 교인들이 봉사를 안한다."
"예수전도협회를 갔다오면 교인들이 헌금을 안한다."
"예수전도협회를 갔다오면 교인들이 눈을 떠서 목회가 어려워진다."

그런말들이 오갔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하면 대한민국 목사님들중에 교인들을 예수전도협회에 보낼사람이 없습니다"라는 말까지도 했다. 어는 사모님도 그런말을 했다는 것을 들은적이 있다.

40년만에 만나는 믿지 않는 동창들이 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서울로 전철을 타고가다가 그전화를 받고는 예수전도협회는 진리의 말씀으로 눈을 띄어 주는 곳이라는 것과 협회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교회는 눈을 뜬 교인들이 모여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루어 나가는 곳이라는 것과 방금 영적인 눈을 뜬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헌금이나 봉사를 안할수도 있고 돌출행동을 할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믿노라하면서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른 것이 억울해서 그런 충격으로부터 오는 일시적인 것이며 그럴지라도 주님의 사랑안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 봉사하고 헌금할수 있는 믿음으로 자라도록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로서 참고 기다려주고 성령의감동으로 헌금하고 봉사할수있도록 가르쳐 주어야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할 몫이라는 것들을 설명을 하면서 너무나 놀라고 당황한 마음에 전철역을 잘못내려서 딴곳으로 갔다.  

마치 나에게는 거짓말을 하나도 안보태고 영적인 학살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저려왔다.

오히려 40년만에 얼굴을 본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내친구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식사비를 내가 계산을 했는데 카운터에가서 취소를 시키고 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얘 너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산데 니가 돈을 내면 되냐?"

영적인 눈을 띄어줄때는 감사하다고 해놓고 그후에 자신의 잘못때문에 교인들이 나가도 예수전도협회때문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예수전도협회는 훈련이나 하려는 단체가 아니다. 교인들을 많이 모아서 집회를 하는것을 추구하는 곳도 아니다. 집회를 하려고 애를 쓰는 단체도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깨끗하게 살아왔다. 돈을 모으려고 하는 곳도 아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지을 마음도 뜻도 없다. 주님이 주신 돈은 일원한푼도 남김이 없이 주님을 위해서 쓰여졌다. 지난 한해동안 예수전도협회 역사상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도 공금과 사비를 써가면서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도 않고 매주 금요일 대구에 내려가서 기도회를 인도했다. 교통비가 적다고 하면서 봉투를 건네는 말에 그런말하지 말라고 책망을 한적도 있다. 간사들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했다. 필리핀선교나 네팔선교에 돈이 없다고 마다하지 않고 있는돈 없는 돈을 들여서 감당을 했다. 저들이 영안이 열리고 기뻐하는 모습을 꿈에선들 잊을수가 없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해왔지 일을 위해서 일하지않았다.

지난해에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도 어려울 때마다 까마귀의 손길이 있었다. 지난 구월 미국 집사님의 중국인 남편이 택시기사를 해서 모은 이십불짜리 오십불짜리 돈을 모아서 천오백불을 헌금을 했다. 그는 한국말을 들을수도 없어 변화된 그의 아내를 보면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때묻은 달러화에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시월에는 재정이 바닥이 났을 때에 지방에 사는 어느 집사님이 땅을 팔기로 계약을 했는데 계약금으로 받은것중에 천만원을 보내왔다. 십이월에는 십년전에 훈련을 받은 목사님이 천만원을 헌금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닌 이층상가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아마도 누구의 말대로 목사님들이 교인들을 아니보내어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는 저들은 아마도 그래서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의 말이나 방법을 구하는지 모르겠다. 저들은 그렇게 행함으로 억만가지 마음의 고생을 하는 보응을 이미 받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전도협회가 세워진 것이나 있는 것이나 일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온세상의 목회자가 등을 돌려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한사람이라도 사람이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협회를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쓸모가 있는한 쓰임을 받을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것은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주님이 이일을 기뻐하시는 것과 마음의 평정과 평안은 강물과 같이 항상 흘러 넘치고 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진다. 인도하는 소경이 눈을 뜨기를 거부하고 진리를 배척한다면 주님은 당연히 인도를 받는 소경을 눈을 뜨게해서 둘을 다 살려내시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집회때마다 새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그들은 사람이 보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서 감동과 감화를 받고 오게 하시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도 어느지방에서 평신도들이 주체가 된 집회가 준비되고 있다. 아마도 교인들이 눈을 뜨는 것을 불편해하는 목사님들 때문에 이런 기이한 일도 일어나는 것 같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역사하심이 분명한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십여년전에 미국의 어느 장로님이 안타까움으로 울면서 부르짖던 아픔이 생각이 난다.

"목사님들이 이진리에 다 등을 돌리고 앉았어요 어떻게 해요."

주님도 이땅에 게실 때에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교인들이 눈을 뜨는 것을 싫어하고 배척했다. 주님은 인도함을 받는 소경들인 백성들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말라고 하셨다. 저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상하게 할까 주의하라고 부탁을 하셨다.

돼지는 진주를 싫어하듯이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싫어한다 싫어할뿐 아니라 미워하고 짓밟고 그것을 주는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목회자라면 눈을 뜬 교인들을 목회하는 것이다. 교인들이 눈을 뜨기를 바라고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은 교인들이 눈을 뜰수만 있다면 무슨짓이라도 마다해서는 안된다.

교인들의 눈을 감게 하는 것이 누구인가 마귀가 아닌가? 그렇다면 교인들이 눈을 뜨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를 위하는 일이 되는 것인가?

영적으로 건강한 교인들을 목회하는 것이 참 목회자이다. 교인들의 눈을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어주고 믿음의 눈이 열려서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 목회이다. 눈이 열린 교인들을 다루지 못하며 그것도 육신적으로 인간적으로 다루어 다시 눈을 멀게한다면 그것은 목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것이다. 교인들의 영안이 열리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 하는 것이 목회자가 아니라 영안이 열린 건강한 교인들을 먹이고 기를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 진정한 목사가 아니겠는가. 참목회는 영적인 눈이 건강한이들을 데리고 목회를 하는 것이다. 눈을 뜬 사람때문에 눈을 뜨게 해주는 협회때문에 목회가 힘들다면 그것은 주님과 맞는 목회가 아닌 것이 자명해지는 것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목회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사 42:16)

눈을 멀게하고 눈이 멀은 교인들을 데리고 목회하기에 안주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의 편에 서있는 사람이요 마귀를 유익하게 하는 자이다.
  
오히려 교인들이 눈을 뜰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자기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인들의 눈을 멀게하는 일들이 중세에도 있었고 교회사 내내 있어 왔으며 지금도 그런 일이 많이 있다.

내가 아는 장로중에 맹아원을 해서 돈을 많이 벌은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맹아들이 고마운 존재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맹아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맹아원장을 하는 것과  
맹아들때문에 혜택을 누리고 돈을 버는 것은 종이한장 차이와 같다. 그도 맹아를사랑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고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교회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지 영적인 맹아원이 아니다.

목회자는 목회자이지 맹아원 원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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