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함을 받는 소경이라도 눈을 떠야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마 15:14)

주님은 주의 말씀을 듣고도 끄떡이 없는 교만함으로 가득찬 바리새인들을 그냥 내버려둘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심지 않은 것은 다뽑힐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주님은 저들의 종교행위를 가리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당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영적인 소경이었다.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자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성들을 가르치고 지도한다고 자처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이방인들인 세상죄인들이 보기에도 인격적으로나 생활에 있어서 결함이 역력하여 손가락질을 당하던 자들이었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19-24)

그런가운데서 주님이 그들의 소위 목회라는 것을 규정하시기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목회’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결과로서 ‘둘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말씀을 볼 때에 우리는 두가지 소경을 보게 된다. 하나는 인도하는 소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도함을 받는 소경이다.

오늘날 우리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 볼수가 없는 현실을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물질을 심으면 물질을 거둔다 ’는 하나님의 말씀도 교리도 아닌 말이 강단에서 서슴없이 말하여지는 시대를 우리는 가고 있는 것이다. ‘바치면 복을 받는다’ ‘봉사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주님의 은혜도 일방적으로 주시는 축복도 아닌 행위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율법주의와 하나님이 없는 세속의 축복의 개념이 교회안에 들어와 있다. 멀쩡한 교인들을 쓰러뜨리는 성경에도 없는 일들이 아무런 교리적인 저항을 받지 않은채 교회안에서 행해지고 있다 혹자는그것을 최면술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기공이라는 귀신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라고도 한다. 문제는 이와같은 것들이 하나같이 열매가 없고 변화가 없는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다 구덩이에 빠지는 죄에 들어가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죄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하나님이 심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요 인간으로부터 온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뽑아 버릴 것이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천박한고 유치한 방법으로 복을 받고 싶어하는 교인들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은 가르쳐주지 못하고 저들을 현혹시켜 헌금을 우려내는 일들이 행해지고 있으며 지도자들중에 그것을 좋게 여기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회개를 부정하고 죄를 자복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교리들을 오히려 혐오스러워 하는 일들과 강단에서나 길에서 전도를 할 때에 천당과 지옥을 말하는것을 꺼려하고 비방하고 핍박하는 일들, 그리고 강단에서 죄와 심판을 말하지 않는 종교적인 관대함이랄까 주님과 상관이 없이 사람을 위로하고 즐겁게하는 말들로 강단이 채워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어느새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교리와 말씀은 자취를 감추고 “목사에게 잘하라 잘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말이나 목회자의 행실이나 도덕성이 부패했어도 목사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협박과 공갈이 난무하고 있다. 주의 종이 주의 말씀을 좇아 행하지 않고 정욕과 사욕으로 목회를 해도 그목사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거짓말에 교인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도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래서 급기야는 인도함을 받는 교인들까지도 저들이 소경을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구덩이에 빠지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목사니 교인이나 구분할것없이 죄를 이기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고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밖에서 그런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리가 없다 그것은 세상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안에 경건한 사람들이 사라지고 세속에 물든 사람들이 가득한 현실이 되었다는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목사가 더러운 죄를 짓고도 교회에서 몇억씩을 챙겨서 나가는 어이없는 일들이 세상에도 없는 일이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성경도 모르는 교인들에게 왜그리 많은 프로그램이 있고 교육이 있는지 모른다. 성경이나 차분히 가르치고 성경말씀대로 사는 본을 보여주어야함에도 교리공부나 하는 캐토릭과 같이 전락을 한 모습을 부인할 수가 없으며 실효성이 의심이 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육프로그램과 영감이 없는 교재들 가지고 수많은 시간들을 교인들에게 요구하지만 저들의 인격이나 생활이 그리스도의 그것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하나라도 보고있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는 소경된인도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할 때다. 말할 필요도 없고 간섭할 필요도 없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돼지에게 진주를 던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진리를 발로 밟고 주는 사람들을 상하게 한 것이 저들의 수천년의 역사가 아닌가? 하나님은 개를 거룩하게 하지는 않으신다. 개는 개로서 남는 것이다. 말씀을 수년을 수십년을 듣고도 거룩함으로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이 보실 때에도 확실하게 개로보신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저들은 그냥 두어라 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개는 개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두라는 말슴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것은 다뽑히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저들의 직분도 저들의 사역이나 땀흘리고 가르치고 애쓰고 수고한 모든 것을 주님이 뽑아 버릴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경으로 인도함을 받던자들이라도 눈을 떠야 한다. 인도를 받던 소경들이 눈을 떠야 한다. 주님이 이땅에서 사역하신 것이 바로 하나부터 열까지 인도함을 받던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이었다. 제자들을 부르신것도 그것이요 산에서 가르치신것도 그것이었다. 백성들의 눈을 열어주는 말씀이었다. 가버나움에서 백성들이 놀란것도 그의 권세 있는 새교훈이었다. 3년반동안을 제자들과함께 고생하시면서 가르치신 것도 인도함을 받던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와같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5,36)

그리고 주님은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인도함을 받던 이들의 눈을 열어주심으로 인도하던 소경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심을 본다. 연약한자들을 들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일을 하셨다. 인간에 의해 어지럽혀졌던 하나님의 교회를 정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역사를 이루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다리는 부흥이 이것이다. 오순절의 역사가 회복되는 것이다.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부흥이 임할 때마다 소경된자들의 영안이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을 보는 눈이 열려졌다. 자기의 허물과 죄를 보고 아파하는 눈이 열려졌다. 교회의 영적인 현실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주님의 눈으로 보는 눈이 열려졌다. 일단 눈이 열려지자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앞에 애통하고 통회자복하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이사야는 이땅의 구속을 기다리며 이렇게 부흥을 말하고 있다.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사 29:18,19)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듣는다는 말씀은 헛된 교리와 사람의 말을 버리고 이제는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어둡고 캄캄한데서 소경의 눈이 본다는 말은 어둠으로 가리워져 있는 영적인 현실과 교회의 잘못과 죄악과 병폐를 보기시작하는 눈이 열린다는 말씀이다.

이제는 인도함을 받는 소경이라도 눈을 떠야한다. 그래주시도록 주님의 은혜를 간구해야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구덩이에 빠지지 않는 은혜가 임한다. 그리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인도하던 소경도 얼마를 구원해 내시는 주님의 은혜도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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