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매스컴에 등장하는 운동선수들이 이기고 금메달을 따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들을 본다. 물론 중심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으로 이기기도 하고 금메달을 따기도 한다면 그것을 나무랄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믿음도 깊지 못하고 그냥 막연히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좋겠다고 해서 그와같은 모습들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아니하다. 어떤 유도선수가 은메달을 따고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곧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감사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면 어떤때는 가슴이 뭉클해질 때도 있지만 어떤때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 모습들에 관해서 주님이 나에게 언젠가 깨달음을 주신 적이 있다.
"얘 나는 행운의 신이 아니야 나는 말씀의 신이지."

그렇다 하나님은 행운의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요 진리 그자체이신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복도 주시고 형통함도 주셨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자기들이 자초한 저주의 삶을 살지 않을수 없는 상태대로 들어 간 것이다.
하나님이 시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대로 사는 연단을 받지 못하고 욕심에 끌려 사는 인격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하고 불행해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를 제외한 하나님이 없는 이방의 모든 종교는 요행의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미신으로 믿는 신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종교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요행의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어느정도의 도덕율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사실 기독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인격적으로 순종하면 진리의 삶을 산다는 교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수가 없고 저들이 정한 일정한 도덕과 수양을 겸비하기만 하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들 가르치는 것이 저들 종교의 일반인 것이다.

하나님이 행운의 신이 아니요 말씀의 신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말씀에 무지하고 말씀을 알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살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복을 주는 요행의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말씀의 신이요 진리의 신이다. 진리에서 떠난 자신의 죄된 모습을 보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그것은 말씀의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순종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나의 부족한 재능이나 능력을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말씀대로 사는것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그분을 가까이하는것 만큼 나를 도와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떠나서는 형통도 축복도 없다.

그렇기에 다윗은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한 사람의 복이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 하며 그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데서 오는 것을 시편 일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만이 가까워질수 있는 분인 것이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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