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는 지방에 계신 어느 분이 스승의 날이라고 일부러 운전을 해 오셔서 점심대접을 했습니다.

저로서는 자격도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날 아침에 운동을 하는데 주님이 갈라디아서 4장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식사를 하면서 그분에게 오늘 하루만 스승의 날이냐고 묻고 무슨 날이든지 일년삼백육십오일이 되어야 함을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일년삼백육십오일을 항상 감사하다고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일년삼백육십오일이 성탄절이고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사십년전 쯤 전이지만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사 세상에 그 아들을 보내신 은혜가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유월달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큰소리로 불렀더니 아내가 지금이 언젠데 한여름에 크리스마스찬송을부르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 때에 나는 아내에게 나에게는 일년육십오일이 성탄절이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버이날도 그렇고 어린이 날도 그러하며 성탄절도 부활절도 그날 하루만 지키기에는 너무나 귀한 날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루만 기념하기에는 너무나 귀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은 감사가 생활이 아니라 하루나 며칠의 행사로 끝나는 이벤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절기가 지나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께 받은 은혜나 또 부모님이나 귀한분들로부터 받은 사랑은 단하루만 기념하기에는 너무나 귀한 것들입니다.

 

해를 지키는 것도 주님앞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몇주년" 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칫 사람의 의와 공로를 앞세우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만의 날개를 달게 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이 유익이 없다고 말한 것은 그것은 우리를 율법주의에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것들을 지키는데에는 믿음이 필요하기 보다는 육신적인 정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육신의 정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육체의 열심을 요구합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할 위험이 있습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입법자도 하나님이요 재판자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사람의 판단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법을 해석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고 사람이 사람을 칭찬하고 사람이 사람을 책망하는 것이 율법주의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법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아 아닌 자들 곧 사람에게 종노릇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을 하려 하느냐?"라고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지키는 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되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잃어버리고 율법주의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은혜의 이전의 상태로 돌아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이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도 십자가도 다 지나간 것입니다.

이제는 주안에 거하는 생활만 있고 은혜만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 거하는 생활 곧 그의 은혜안에 거하는 생활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을 지키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달을 지키지 말고 은혜를 지키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절기를 지키지 말고 그 절기의 은혜를 사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해를 지키지 말고 항상 주앞에서 겸비하여 주안에 거하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길이 아직도 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뒤엣것을 잃어버리는 은혜입니다.

내가 잡은줄로 여기는 교만에서 벗어나는 은혜입니다.

앞에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는 은혜입니다. 

그것이 부르심의 상을 잃어버리지 않는 비결입니다.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리고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날이 아니고 달이 아니고 절기가 아니며 해가 아니라  나같은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합니다.


(고전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우리 모두 주님의 살과 피를 삼가 지키는 생활을 사는 은혜를 사모합시다. 아멘.

  

(*.154.70.248)